[이슈 프리즘] 기본소득 증세론이 공허한 이유

입력 2020-06-15 18:08   수정 2020-06-16 00:13

결국 증세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더좋은미래가 증세론에 불을 지피자 너도나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말인즉슨 맞다.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낮다거나, 봉급생활자 절반 가까이가 사실상 세금 한 푼 안 낸다거나, 부가가치세율이 40년간 10%로 고정돼 있다거나…. 이래저래 증세에 나서야 할 근거는 차고 넘친다. 복지 늘리자고 적자국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도 없다. 기본소득은 소득·계층을 가리지 않고 주는 건데, 빚을 내 부자들까지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세를 하면 모든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증세로 기본소득을 충당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과격한 증세론부터 보자.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유세는 소득을 포함한 자산에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예컨대 토마 피케티 주장대로 100만달러 초과분에 80% 특별세율을 부과하는 식이다. 조세재정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런 방식의 세금을 도입하면 세수효과는 연간 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일단 시도해 보자고 제안한 연간 20만원의 기본소득을 위한 필요재원 10조원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본산인 ‘학현학파’가 최근 심포지엄에서 주장한 ‘소득상위 10% 증세론’이나 여권 내에서 거론되는 종합부동산세, 법인세율 추가 인상도 다수 경제적 약자들의 박수를 받겠지만, 실제 세수효과는 크지 않다. 종부세의 경우 정부 목표대로 최고세율을 4%로 인상해도, 추가 세수 확보액은 7600억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국회예산정책처). 법인세는 오히려 덜 걷혀 세율인상 효과가 없었다.

세수 기여도를 보면 더 명확하다. 종합소득세 기준 상위 10%가 이미 전체 소득세의 86%를 부담하고 있으며, 법인세는 상위 1% 대기업 비중이 74%에 달한다. 여느 선진국보다도 높다. 여력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재명 지사는 이런 한계를 아는 듯 탄소세, 국토보유세, 로봇세 등 새로운 세목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세목 역시 사실상 기업들에서 걷는 법인세의 확장에 불과하다. 세수효과는 한계가 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국세수입 양대 세목인 소득세(작년 기준 83조원), 법인세(72조원)를 지금보다 50% 더 걷으면 어떨까. 매년 78조원이 정부 곳간에 더 들어온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온전한 기본소득은 충당하기 어렵다. 민간단체인 랩2050에 따르면 기본소득으로서 의미 있는 수준인 월 30만원 지급에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180조원에 달한다.

남은 방법은 보편적 증세다. 더좋은미래가 조세저항을 뻔히 알면서도 제안한 대안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기본원칙에 따라 세금을 안 내는 저연봉 근로소득자들도 한 푼이라도 내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2013년 세제파동을 기억한다면 결코 내놓기 힘든 주장이다. 근로소득 공제방식을 바꿔(소득공제→세액공제) 중간소득 이상의 세부담을 늘리자는 취지의 당시 세법개정안은 조세 원칙에 부합했지만, ‘샐러리맨 지갑털기’라는 프레임에 휘말려 후퇴했다. 당시 김낙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직을 걸고 지켜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여론 눈치를 본 대통령에게 밀려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훗날 털어놨다.

보편세인 부가세 인상도 한계가 있다. 현행 세율(10%)보다 5%포인트 올리면 연간 35조원이 더 걷히지만, 이 역시 기본소득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온갖 증세로도 안 된다면 방법은 하나다. 기존 복지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한번 늘린 복지를 되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권 잃을 각오로 국민을 설득한다면 몰라도, 이 정부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결국 기본소득도 공허한 논쟁만 하다가 끝날 게 뻔하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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