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또 벼랑끝 남북관계, 희망고문 끝낼 때다

입력 2020-06-17 18:17   수정 2020-06-18 00:16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6월, 북한은 ‘벼랑 끝’ 퍼포먼스의 막을 올렸다. 김정은 시대의 협박극은 선대(先代)의 양과 질을 초월한다. 2017년까지가 시즌1이었다면 지금은 몇 날 며칠 기획한 시즌2의 에피소드들을 연출하는 상황이다.

시즌2의 주연은 지난 4일부터 ‘대적(對敵)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다. 등장하는 조연들도 다채롭다. 이선권 외무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치적 선전감 보따리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이제부터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겁박하는가 하면, 외무성 국장은 “비핵화라는 ×소리 집어치워야… 우리는 계속 무섭게 변할 것”이라며 큰소리쳤다. 여기에 북한 옥류관 주방장까지 가세해 “국수 처먹을 때 요사를 떨더니 전혀 한 일이 없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조롱했다.

13일 제1막 마지막 장에 다시 등장한 김여정은 “다음 대적(對敵)행동은 북한군 총참모부에 넘긴다”며 제2막에서 연출할 군사 도발을 예고했다. 그리고 16일 북한군은 개성 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북한은 국제 제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더욱 곤궁해진 주민들을 다잡고, 남한 정부를 앞세워 난국을 돌파하고자 압박 공세를 펴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16일 김여정의 협박이 현실이 될 때까지 유화적 태도로 일관했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 행위 처벌과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모든 합의 준수를 다짐했다. 외교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희망고문’을 되풀이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우리 정부가 판문점·평양 선언을 했지만 약속을 지킨 것이 별로 없다”고 자책했다. 구태스러운 선전·선동에 대해 따끔한 지적 하나 없다가 뒤늦게 “강력한 유감과 대응”을 경고했다. 문 대통령의 특사 파견 간청도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moonshine’은 영·미 문화권에서 ‘밀주’ 또는 ‘헛소리’로도 쓰인다고 알려지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국민은 엄중히 묻는다. 지금까지 북한과 어떤 소통과 거래를 했길래 이토록 쩔쩔매다가 구체적 메시지도 없는 경고에 그치는가. 남북 교류는 발전해야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열패감만 안겨줄 뿐이다.

과거에도 북한은 대북심리전을 체제 생존 위협으로 간주해 과민 반응을 보였다. 2014년 10월 군사회담에서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은 전단 살포 금지를 요구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금지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를 위해 자제를 권유하겠다”고 답변했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전쟁을 협박하다가 돌연 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결국 우리는 북한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두 사례는 “확전을 억제하려면 적보다 우위의 의지·용기·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허먼 칸의 명제가 진리임을 입증한 셈이다.

북한의 대북 전단 문제 제기는 걸고넘어지려는 방편에 불과하다. 북한의 진짜 목적은 남한을 볼모로 잡는 ‘벼랑 끝’ 전술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몸값’을 올리려는 데 있다. 이런 북한의 행보는 한·미 동맹이 균열되지 않는 한 차기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는 오는 11월 3일까지 지속될 것이다.

사실 전쟁을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북한 최고책임자다. 본래 독재자의 운명은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쫓기는 신세가 돼 안락한 생활과 권좌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발표한 확고한 군사대비의 요체는 적의 도발원점·지원세력·지휘세력을 제압할 준비태세를 갖추는 데 있다. 한반도 평화를 사자의 위엄과 여우의 지혜 없이 만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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