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는 똥개" "요사 떨더니"…'말폭탄' 전담작가까지 둔 北

입력 2020-06-19 17:24   수정 2020-06-20 00:34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7일 내놓은 담화는 원색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를 폄훼하기 위해 각종 수사를 총동원했다. 문 대통령을 미소로 맞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표현 하나하나에 날이 서 있었다.

북한의 담화에는 거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잡쓰레기” “인간추물” “정신병적인 광태” 같은 육두문자가 등장하는 건 비일비재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아프리카 원숭이”, 70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시집 못 간 노처녀”라고 하는 등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비유를 통한 힐난과 조롱도 특징이다.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논평에서 청와대의 강경대응 방침을 가리켜 “절간의 돌부처도 웃길 추태”라고 한 표현이나 과거 박지원 전 국회의원에게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었다”, 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북한의 ‘정예 글쟁이’들

북한의 가시 돋친 담화문 뒤에는 북한 전국에서 뽑힌 ‘정예 글쟁이’들이 있다. 북한에는 노동당 산하의 각 조직과 외무성 같은 정부기관, 군부 등에 선전선동용 글을 쓰는 수십 명 단위의 별도 조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직에 속한 인력은 ‘작가’로 불리며 글쓰기만을 전업으로 한다고 한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에서는 사회에 진출해 글쓰기로 인정받은 이들이 뽑혀 대학에서 작가 교육을 받는다”며 “그중에서도 김일성종합대나 김형직사범대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 당에서 글을 쓰는 전문 인력으로 선발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대외용 메시지를 작성할 때 증오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강한 표현을 쓰도록 하는 지침도 있다고 한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에서는 비난 글을 쓸 때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펜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쓰라’고 외교관들을 교육한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서 글솜씨가 출세를 위한 필수 덕목인 것도 논평 등에 인상적인 표현이 많은 요인 중 하나다. 태 의원은 “젊어서부터 독설과 유머, 착착 달라붙는 비유를 담은 글로 이름을 날린 송호경은 외무성 부상, 통일전선부 부부장까지 올라갔다”며 “이용호 외무상, 김계관 전 외무성 1부상, 하노이 미·북 실무협상 때 북측 대표를 맡은 김혁철 등도 대외용 글을 잘 써서 승진한 인물로 꼽힌다”고 했다.

분단 이후 달라진 北 언어습관

북한의 평소 언어습관이 한국과 다른 것도 담화문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은다. 북한은 외래어를 쓰지 않아 순우리말로 모든 어휘를 대체하다 보니 한국인에게 낯선 표현이 많다는 것이다.

추상적 개념인 관념어보다는 구체적인 형상어를 많이 쓰는 것도 북한말의 특징이다. “배가 고프다”를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북한은 공개 석상에서 말과 글을 통해 비판과 비평을 할 기회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거친 표현을 쓰는 분위기가 정착됐다는 설명도 있다. 북한에서 작가 활동을 했던 김주성 씨는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는 생활총화가 잦기 때문에 글쓰기나 웅변을 할 기회가 많은데 이때 돋보이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도 비유적 표현을 많이 썼다”며 “북한 당국이 이를 주민에게 체득하게 하면서 비유적 표현이 일종의 미덕처럼 됐다”고 덧붙였다.

거칠더라도 무게감은 달라

북한 당국이 담화의 경중을 나누는 기준은 ‘글쓴이’와 게재 ‘매체’다. 비슷한 수준의 험악한 표현과 내용이라 할지라도 이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진다.

우리민족끼리나 조선의 오늘, 메아리, 조선신보 같은 대남선전매체의 기사로 발표하는 것은 무게감이 가장 작다. 북한 주민은 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표현이 대내 매체보다 과격한 편이다.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한 일도 없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달나라타령” 등의 표현은 여기서 나왔다.

노동당 기관지이자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배포되는 노동신문은 북한 언론매체 중 가장 무게 있게 평가된다. 당이나 정부의 성명과 담화문은 언론매체보다 무게감이 실린다. 각 부처 산하 협회들의 발표문 또는 공개질문 형식의 논평에서 시작해 각 부처 부상(우리의 실·국장급~차관 사이) 또는 제1부상(차관급)의 성명으로 올라가면 중요도가 더 높아진다.

최고 수위는 김정은의 성명으로 발표한 담화다. 김정은은 201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맹비난한 것에 대해 비난한 적이 있다.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란 말도 이 성명에서 나왔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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