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칼라일은 왜 '제로금리 교환사채(EB)' 방식으로 KB에 투자했을까

입력 2020-06-21 14:52   수정 2020-06-21 15:03

≪이 기사는 06월19일(09:4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외국계 사모펀드(PEF) 칼라일이 KB금융에 5000억원 가량을 투자하기로 하고 먼저 2400억원을 교환사채(EB) 형태로 사는 계약을 18일 체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칼라일그룹은 KB금융이 자사주(500만 주)를 활용해 발행한 EB를 사는 방식으로 이 회사에 투자했다. EB는 향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이다. 이날 공시에 따르면 칼라일은 오는 8월29일부터 2025년 6월16일까지 주당 4만8000원에 EB를 KB금융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단 3년 반 동안은 주식을 처분하지 않기로 계약을 맺었다. 채권 만기는 2025년 6월30일까지고, 이자는 주지 않는 제로(0) 금리 채권이다. 칼라일은 앞으로 2500억원 가량을 추가 투자해 총투자 금액을 5000억원 가까이 키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이 향후 EB를 주식으로 바꿔 KB금융 지분 1.2%를 확보하면 6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KB금융의 최대주주는 9.97%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이어 JP모간체이스은행(6.40%), 싱가포르정부(2.47%), 삼성자산운용(1.87%), 뱅가드(1.46%), 중국은행(1.16%), 우리사주조합(1.13%) 순이다. 나머지는 소액주주들이 나눠 갖고 있는 체제다.



단순히 생각하면 KB금융 주식을 블록딜(장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사들여도 될 텐데, 굳이 EB의 형식을 띤 이유가 뭘까. KB금융과 칼라일 사이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있을까.

KB금융이 EB의 대가로 '자사주'를 팔겠다고 콕 찍어 내놓은 것이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날 공시에 따르면 KB금융의 자사주 규모는 전체 발행 주식수의 6.29%(2617만3585주)에 달한다. KB금융 내에서는 자사주 물량을 줄이기를 바라는 기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관계자는 "장부가 대비 주가(PBR)가 0.4 수준으로 낮은 상황"이라며 "KB금융의 지배구조와 경영진의 역량 등에 대해 칼라일에서 좋게 평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KB금융의 '자사주'가 투자 대상이 되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KB금융이 가지고 있는 자사주는 대부분 과거 주가가 4만원 이상일 때 사들인 것이다. 장부에 매입가격이 적혀 있다. 이 이하에서 팔면 손실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다. 구체적인 자사주 평균 매입 단가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4만8000원보다는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 매입 단가가 EB 전환 단가의 하한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KB금융은 이번 투자를 받아들임으로써 2조3400억원에 사기로 한 푸르덴셜생명 인수 비용 및 운영비용 중 일부를 충당할 수 있게 됐다. KB금융은 이날 3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도 이사회에서 결의했는데, 푸르덴셜생명 관련 비용을 감당하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한 용도다. 자사주를 줄이고 EB를 발행함으로써 발생하는 자본구조상의 부정적 변화를 영구채 발행으로 균형을 맞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으로서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과시하면서도 주주친화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도 보여줄 수 있다. 무엇보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신호'를 강력하게 보낼 수 있다. 칼라일이 투자를 해서 오르는 게 아니라, 칼라일이 기대하는 수익구조 때문이다.

칼라일의 관점에서 보면 주식과 달리 EB는 '가격하락'의 가능성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했지만, 2025년 6월16일까지 KB금융 주가가 4만8000원보다 올라가면 칼라일은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제로금리 채권이기 때문에 칼라일의 이번 투자는 결과적으로 행사가격이 4만8000원인 KB금융의 콜옵션과 KB금융 회사채를 함께 산 것과 거의 유사하다. 칼라일로서는 콜옵션을 살 때 드는 비용과 EB에서 원래 받아야 하는 이자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봤을 수 있다. KB금융이 향후 수년 내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은 사실 크지 않기 때문에 칼라일로서도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 주체도 눈길을 끈다. 칼라일 그룹은 계열사가 운용하는 '칼라일 아시아 파트너스'에서 거느리고 있는 킹스맨 인베스트먼트(Kingsman Investments)를 통해 EB에 투자했다.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LP)들이 있을 것이다. LP들의 관점에서는 칼라일과 KB금융 간 전략적 이해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KB금융의 주가가 5년 내 4만8000원 이상으로 오른다'는 쪽에 베팅한 것이 결과적으로 맞느냐 아니냐, 그래서 투자수익을 내느냐 못 내느냐가 중요하다.

칼라일은 앞으로 2500억원 가량을 추가로 KB금융에 투자할 예정이다.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금융권에서는 칼라일이 전체의 절반 금액을 EB 방식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한 만큼 나머지는 시장에서 사들일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상은/김채연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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