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혼자서 3조원 굴리는 국민연금 매니저들...이대로 괜찮나?

입력 2020-06-25 14:22  

≪이 기사는 06월25일(07:1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국민연금 대체투자 운용역들은 죽을 맛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체투자의 핵심인 '실사'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럼에도 올 연말까지 이들이 투자해야 하는 규모는 최소 30조원에 달한다. 매주 6000억원 가량을 투자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규모다. 이는 국내 최대 공제회인 교직원공제회의 전체 운용자산(30조원)과 맞먹는 수치다.

운용 규모가 너무 크다보니 시중에 풀린 투자 물건은 많아도 정작 뛰어들 수 있는 투자 건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실사에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대체투자 분야에서 업무량은 투자 규모가 아니라 건수에 비례하기에 드물게 시장에 나오거나 경쟁 입찰로 진행되는 '빅딜'만 찾아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계 3대 연기금'이라는 위상과 달리 해외 시장에선 겨우겨우 빌듯이 투자 건을 조달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연금의 속사정이다.

◆국민연금 인당 운용규모 사실상 3조원 넘어서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운용역 1인당 운용자금 규모는 작년 말 기준 2조6000억원에 달했다. 작년 말 기준 전체 기금 적립금 737조원을 운용역 정원인 280명으로 나눈 수치다. 국민연금이 지난 5월 의결한 '2021년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올 연말 이 수치는 인당 2조7700억원, 최근의 인력 충원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내년 연말에는 약 2조8300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인당 운용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현재 구조적으로 보험료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기금 축적기'에 있지만 그만큼 운용인력을 확보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인력은 2014년까지 156명에 불과했다. 그 해 기금적립금은 470조원으로 인당 운용규모는 3조원에 달했다.

이에 당시 박근혜 정부는 기금의 지속적 증가에 대응하고, 사모펀드·부동산·인프라 등 대체투자 분야로 투자를 다변화시키기 위해 156명에 불과했던 운용역 정원을 이듬해 219명으로 1년 만에 40%를 늘렸다. 이후 2016년까지 정원을 259명으로 크게 늘렸고 이후에는 연 평균 7명 수준으로 증가폭을 완화했다.

운용역 수를 늘리면서 인당 운용규모는 2016년 2조 1500억원대로 내려갔다. 하지만 실질적인 인당 운용규모는 이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17년 2월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2015년까지 연간 10명 안팎이던 운용역 퇴직자가 2016년 이후 평균 30명대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상반기 운용역 정원은 280명이었지만 실제 현원은 240명에 불과했다. 신규 채용을 통해 가까스로 정원을 채웠지만 대부분 경력 7년 이하의 주니어급 인력들로 채워졌다. 한 국민연금 출신 관계자는 "실질적으론 이미 2017~2018년부터 국민연금의 인당 운용규모는 3조원을 넘어선 셈"이라며 "경력 짧은 운용역 한 사람이 웬만한 중형 공제회 전체 자산만큼을 운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돈은 많은데 시간은 없어...빅딜만 찾다 알짜딜은 놓쳐

실제로 이 같은 수치는 국민연금과 경쟁하는 글로벌 연기금과 비교하면 과도하게 높은 수치다. 매년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기금운용평가에서 국민연금과 비교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운용 인력 1명이 2000억원 가량을 맡는다.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은 약 7000억원,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시스템(CalPERS)는 1조원 수준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은 약 4000억원, 한국 국부펀드 격인 한국투자공사(KIC)도 1조원 안팎이다. 한 공제회 핵심 관계자는 "포트폴리오의 차이나 위탁 운용 등 간접투자 비중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하게 큰 차이"라며 "투자의 질을 유지하기 버거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전반적인 투자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공식적인 유통 시장이 존재해 대규모 거래가 용이한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은 사정이 낫지만 철저히 비공개 정보를 중심으로 딜소싱(투자발굴)이 이뤄지는 대체투자 분야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2018년 15조원이었던 대체투자 신규 약정 규모가 2019년 25조원, 올해 최소 30조원 이상으로 늘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투자금을 소진해야 하다보니 투자 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기관당 투자금 500억~1000억원대 안팎의 중소형 건은 검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체투자 시장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면 최대한 많은 딜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인데 돈은 많은데 사람은 없으니 큰 딜만 찾고 있다"며 "보통 큰 딜은 시장에 이미 다 알려져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보니 '알파'(초과수익)를 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전주에 있어 찾기도 힘들다보니 해외 GP(운용사)들도 정말 큰 딜이 아니면 국민연금에 묻지도 않는다"며 "우스갯소리로 국민연금엔 큰 딜 아니면 죽은 딜만 간다고 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대론 수익내기 어렵다" CIO 하소연에도...정부 '수수방관'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1일과 12월 27일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CIO)는 두 차례에 걸쳐 투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현재 인력 수준으로는 늘어나는 해외투자 비중과 초과수익률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속된 말로 가랑이 찢어지게 해서 올해 대체투자에 25조원을 약정했다"며 "계획보다 중요한 것이 실행인데, 해외 및 대체투자를 위해 해외 사무소에 보낼 인력도 없고 (해외에서 돌아오면)다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지난 10월 기금위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투자 환경 제고방안을 수합하고 인력 증원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본지 확인 결과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기금위에서 관련 사안에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논의를 주도해야 할 수장인 당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잔여 임기 1년을 남기고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조기 사퇴해 구심력을 잃었다. 여기에 올 초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선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내에서 뒷전으로 밀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해결책은 우수한 인재 확충으로 귀결되지만 어떤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단 인력 확충을 위해 기재부로부터 정원 및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만 의견차가 큰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재부에 100명 가량의 기금운용역 정원 증가를 요청했으나 실제 증가는 단 8명에 그쳤다. "매년 대규모 퇴사로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인원 요청의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기재부 측의 입장이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2018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제안한 서울사무소 설치는 전주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 중이던 김 전 이사장을 비롯해 지역 사회와 국민연금공단 노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은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빨라진다는데 스튜어드십코드처럼 수익성과 직접적 관계 없는 이슈만 추진되고 정작 어떻게 우수한 인력을 뽑아 수익률을 높일지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며 "적어도 2040년까지 기금이 구조적으로 증가하는만큼 인력 보강은 물론 대체투자 운용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서울 사무소를 설치해 운용 부담은 줄이고 투자의 질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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