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운의 실학자 이덕리가 쓴 '조선 국방개혁백서'

입력 2020-07-02 18:09   수정 2020-07-03 03:32

이덕리(1725~1797)는 비운의 실학자였다. 친형 이덕사가 정조 원년에 사도세자의 추존을 논한 상소문을 올렸다가 처형당하면서 전남 진도로 귀양을 가 평생 유배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상두지(桑土志)》는 그가 유배지에서 남긴 필생의 역작으로, 정민 한양대 교수가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온 것을 바로잡고 제자들과 함께 번역했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국방개혁 백서다. 조선의 지리와 기후, 경제와 군사 정보 등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평시와 전시에 함경·평안·황해도 등 서북방 연로(沿路) 지역의 방어 체제와 무기 체계를 정밀하게 논했다.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 ‘대동수경’ ‘민보의’에 인용하고 두루 참고했을 정도였다.

이덕리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기마병이 주적이 된 상황 변화에 주목하면서 최적의 방어 체제와 무기 체계를 제시했다. 둔전 조성을 국방개혁의 출발로 삼은 것도 그래서였다. 속도전에 능한 기마병 위주의 청나라 군대에 맞서려면 산성 위주의 기존 방어 체계를 개편해 평지에 성을 쌓아야 하며, 서북방의 전략 요충지에 둔전을 조성해 전시 식량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 그는 역대 중국의 둔전제도를 두루 참고해 둔전을 설치할 지역과 규모, 둔전용 토지를 사들일 재원 마련 방법, 산간 지대의 수리시설 설치 방안, 둔졸(둔전의 병력) 모집 대상과 급료 지급 방식, 운영비 마련 대책까지 촘촘히 내놓았다.

관서, 해서 지역의 실제 도로 상황과 청나라 군대의 전술에 맞춰 성을 설계해 성벽을 쌓고 돈대를 세워 대포를 배치하는 방법, 도로와 도랑, 함정을 설치해 적을 막아내는 방법도 논했다. 기마병과의 접전에 특화된 도검류의 철제 무기와 화포를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 전차 등 여러 병장기의 제작 및 활용 방안도 제시돼 있다.

‘상두’는 뽕나무 뿌리다. 올빼미가 지혜로워 큰비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 둥지의 새는 곳을 미리 막는다는 ‘시경’의 기록에서 따온 것으로, 유비무환의 의미로 많이 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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