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공정위는 벤처 훼방꾼인가

입력 2020-07-02 18:15   수정 2020-07-03 00:16

전 세계에서 자국 기업이 개발한 검색엔진을 가진 나라는 미국을 빼곤 한국과 중국뿐이다. 네이버 카카오의 성장은 중국 정부가 구글을 내쫓고 바이두를 키운 과정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정부도 잘 모르고 대기업도 잘 모르는 사이 벤처가 시장에서 일궈낸 빛나는 성과다.

미국이 주도하는 플랫폼마다 중국은 대항마를 키워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플랫폼 경제에 딴지를 거는 배경에 EU에는 대항마가 없어 플랫폼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 토종 검색엔진이 버티며 글로벌 거대기업인 구글과 경쟁하면서 발생하는 소비자 후생효과는 그렇지 않은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분야의 갑을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한다. 갑을 문제라면 기존 법으로도 충분하다. 플랫폼을 겨냥한 별도 법을 만들면 이중·삼중의 규제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것도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나온 사정 수준의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플랫폼 기업이 위축되고도 남을 일이다. 한국에서는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안방을 향한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이래 놓고 정부가 벤처 창업을 외친다면 누가 믿겠나.

인수합병(M&A)에 대한 공정위의 시각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플랫폼이 소규모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M&A를 기업결합 신고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두 눈 사이에 공간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공정위는 인수자만 쳐다본다. M&A가 피인수자의 절박한 탈출구이자 새로운 도전의 출발일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감는다. 상장(IPO)보다 M&A를 바라는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이 좌절할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 할까. 공정위의 논리대로면 M&A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경쟁이 벌써 사라졌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새로운 경쟁자, 새로운 스타트업이 샘솟듯이 출현하고 있다.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해 달라고 했더니 공정위가 나서 ‘CVC 통제법’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도 황당하다. “CVC를 지주사 아래에 두면 대기업 사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외부자금 유입을 차단할 장치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게 그렇다. 지금이 60~70년대도 아닌데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금산분리의 사금고 논리를 공정위가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여기에 지분 제한, 투자 대상 제한까지 가세하면 CVC는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가 되고 만다.

공정위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CVC는 대기업보다 스타트업과 벤처 업계가 대기업과의 상생 모델로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항이다. 게다가 CVC와 경쟁을 해야 하는 벤처캐피털까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처럼 CVC와 벤처캐피털이 경쟁하면 벤처펀드의 판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벤처투자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입만 열면 상생을 말하는 공정위, 임무상 경쟁을 반겨야 할 공정위의 자기모순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벤처가 개발한 기술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3배에서 10배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이러면 벤처업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대기업과 벤처가 서로를 적대시하며 10배로 더 멀어지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공정위가 경제적 자유를 10배로 늘려 기술 또는 기술기업을 사고파는 시장을 키울 생각은 왜 못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앞으로 몇 년 안에 전 세계 벤처 가운데 ‘게임 체인저’를 뺀 70~80%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산업의 판이 바뀌면서 플랫폼을 비롯해 벤처는 또다시 생존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공정위는 벤처에 찬물을 끼얹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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