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진보적 실용주의' 내세우지만…'헤징형 정치인' 꼬리표 붙어

입력 2020-07-02 17:30   수정 2020-10-07 16:33


“자본주의란 자전거와 같아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성장도 멈춰서면 내부에 잠재된 문제들이 한 번에 표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 출입기자단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성장은 격차를 키우고 승자와 패자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총리로서 ‘포용 성장’을 거론하며 한 발언이지만, 차기 대권 도전자로서 ‘성장’에 방점을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 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의원은 ‘진보적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문제 해결에서는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측근인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 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원래는 보수에 가까운 중도였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중도적 진보를 체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당 일부에서는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결국 보수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복지 강화법 잇단 발의
이 의원의 과거 의정 활동을 톺아보면 그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은 이 의원이 2000년 국회에 입성한 뒤 대표 발의한 법안 207개를 집중 분석했다. 지역 현안을 제외하면 노인, 장애인, 서민 등의 복지 확대 등을 요구하는 법안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경로당 급식비를 보조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09년에는 아동수당 지급을 법제화하는 아동수당법을, 2011년에는 노숙자를 지원하는 홈리스복지법안을 내놨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12년 6월에는 대기업이 골목상권 관련 사업에 진출할 때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는 소기업·소상공인 특별법 개정안을, 같은 해 9월에는 대형 유통업체의 판매 품목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나마 기업 친화적으로 분류되는 법안은 건설기계·운수회사 등을 지원하는 법 정도였다. 건설기계에 유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2013년), 택시 운전석과 보조석에 에어백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자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2014년) 등이 대표적이다.
총리 시절 규제 혁신 직접 챙기기도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내면서 규제 혁신을 직접 챙기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규제 혁신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한다고 한다”며 관료 사회에 규제 혁파를 강하게 주문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을 맡으면서도 “정부와 민주당은 검토해서 재계의 합리적인 제안은 수용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성장 산업의 하나로 바이오헬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 의원이 전남지사와 총리를 거치면서 중도 쪽으로 한 발 다가선 느낌”이라고 했다.

이 의원의 이념적 지향점은 그의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통령은 ‘선비의 문제 인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 기념행사 추도문에서 이를 언급하며 “대통령님의 ‘조화’와 ‘비례’의 지혜는 더욱 소중해졌고 저희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오히려 보수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16일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SNS에 “극히 유감. 엄정 대처 필요”라는 글을 즉각 올리는 등 민주당 내에서 드물게 강경한 주장을 내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주 외교’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서도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 모순된 발언도
최근 들어 이 의원은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선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논란에서 비켜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기본소득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취지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며 원론적인 의견을 내놨다. 대권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각각 찬성과 반대로 명확한 생각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의원은 증세에 대해서도 “먼저 사회안전망 확충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이를 위한 세수는 얼마나 더 필요할 것인가부터 따져야 한다”고 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과 관련해서는 “필요하지만 금산분리 원칙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며 모순적인 발언을 내놨다. 원격의료를 두고서는 “우리가 당장 대응할 문제가 많아서 논쟁적 문제에 먼저 빠져드는 것은 지혜롭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선을 그었다.

차기 대권주자로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이 의원의 이런 태도에 ‘전략적 모호성’이란 해석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 의원은 “오이는 머리부터 먹으면 써서 다 못 먹는다”는 ‘오이론’을 거듭 내세우고 있다. 급하게 논의를 진행하면 불필요한 논란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의원에게 ‘헤징(hedging)형’ 정치인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헤징은 ‘위험을 피한다’는 뜻의 경제 용어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이런 모호한 태도에 대해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훈/조미현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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