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전에 졸업했어야 했나"…신입생까지 "박탈감" [라이브24]

입력 2020-07-05 08:00   수정 2020-07-05 10:45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보안검색 직원 1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고용하기로 한 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박탈감을 호소하는 건 취업준비생만이 아니었다.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까지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의 한 카페에서 토익 공부를 하던 대학 4학년 윤모 씨(27)는 "졸업과 취업을 위해 토익을 공부하고 있다. 굳이 졸업요건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을 필요가 있나 싶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 목표로 하는 기업이 인국공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는 "인국공은 '공기업 끝판왕'이라 불린다. 그런 곳에서 서류전형과 필기시험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윤 씨는 "공기업 입사에 필수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다. 한 주 한 번씩 NCS 스터디 모임을 했던 친구가 지난주부터 모임을 해체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인국공 사태로 다들 기운이 빠져 스터디를 중단한 것 같다.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도 시간 안에 다 못 푸는데 억울한 마음에 손에 안 잡히고 종일 다른 생각만 한다더라"고 전했다.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2017년 5월 이전 입사한 보안검색 요원들에 대해 필기시험을 실시하지 않고 공사 직원으로 전환한다는 점. 그는 "대입에서도 수능이든 논술이든 내신이든 대부분 필기시험을 통해 변별력을 두지 않나"라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과정이 너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앞서 인국공은 문재인 대통령 방문 시점인 2017년 5월 이전 입사 보안검색 요원들에 대해서는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면접 등을 통한 적격심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평가가 '절대평가'로 진행돼 사실상 전체 보안검색 요원이 합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들은 서류전형과 인성검사, 면접 외에 필기시험도 포함된 공개경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전형에는 기존 보안요원 외에도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기존 보안요원에게 가점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 새로운 공채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대학생들의 불만이 콕 집어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에 쏠리는 이유다. 카페에 앉아있던 또 다른 학생은 "우리가 대학을 너무 늦게 들어온 것이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불공정한 과정'으로 인한 박탈감은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도 느끼고 있었다. 서대문구 소재 대학의 경영학과 1학년 김모 씨(19)는 "이번 사태로 '꼭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들었다"면서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한 관문이란 생각에 입학했는데 진로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볼까 한다. 휴학도 고려 중"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2학년까지 마친 영어영문학과 재학생 성모 씨(22·여)는 "지난 2년간 약 18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졸업하려고 앞으로 2년 더 다니면 비슷한 규모로 대출을 더 받아야 할 텐데 이렇게 빚을 질 만큼 학위가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성 씨는 "성적순으로 사람을 줄 세워서는 안 되지만, 어쨌든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가려면 좋은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받고 NCS나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 루트 아니었느냐"면서 "이번 인국공 사태는 이같은 과정을 무시한 처사다.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기존 체제 속에서 열심히 공부해온 입장에선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인국공 사태와 관련해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오'라는 글은 공개 하루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 관계자 답변 기준을 충족했다.

이 글에서 청원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철폐 공약은 앞으로 비정규직 전형을 없애 채용하겠다든지, 해당 직렬의 자회사 정규직인 줄 알았다"라면서 "(인국공 정규직 전환의 경우) 정직원 수보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 전환이 된다.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은 무슨 죄냐"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것이 평등이냐. 이건 평등이 아니다"라며 "역차별이고 청년들에게 더 큰 불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정확히 파악해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지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현재 청와대는 "본질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인국공만의 일이 아니다.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일인데 일각에서 불공정 문제를 제기해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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