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美 대통령의 옷'도 무너졌다

입력 2020-07-09 17:33   수정 2020-07-23 14:05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미국 전·현직 대통령 45명 중 41명이 취임식 때 입은 202년 역사의 양복 브랜드. ‘아메리칸 클래식’의 대명사로 인식되며 화이트칼라 남성 직장인의 자부심으로 통하던 브룩스브라더스(사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 무너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의류업체 브룩스브라더스가 파산법 11조에 따라 델라웨어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는 소비자의 의류 및 쇼핑 트렌드가 캐주얼과 온라인으로 변화하면서 고전해 오다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았다.

브룩스브라더스는 미국에 봉제 공장을 두고 자국 생산을 고집한 회사였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브룩스브라더스는 ‘미 의류산업의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평가다.

이번 파산보호 신청에 앞서 브룩스브라더스는 뉴욕과 매사추세츠,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3개 공장을 매각하거나 폐쇄하고 생산 라인을 해외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표가 붙은 남성복이 결국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1818년 헨리 브룩스가 뉴욕에 설립한 브룩스브라더스는 오랜 전통만큼 기록도 많다. 세계 최초로 양복 정장을 기성복화했다. 깃 아래로 단추가 달린 현대식 버튼다운 셔츠, 사선 모양의 줄무늬 넥타이를 처음 내놨다. 남북전쟁 당시엔 군복을 납품했고, 고급 브랜드치고는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250개 매장을 운영해온 브룩스브라더스는 이번 파산보호 신청과 함께 51곳의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다.
온라인 유통 대응 늦어…부채만 5억~10억달러
브룩스브라더스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건 1988년 영국 의류회사 막스앤드스펜서에 인수되면서부터다. 당시 막스앤드스펜서는 브룩스브라더스에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인 ‘바나나 리퍼블릭을 따라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동안 쌓아온 고급 양복의 정체성이 무너졌고 소비자들은 ‘품질이 예전만 못하다’며 외면하기 시작했다.

적자가 누적되자 막스앤드스펜서는 브룩스브라더스를 매물로 내놨다. 2001년 이탈리아 안경테 회사인 룩소티카 창업주의 아들 클라우디오 델 베키오가 2억2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인수했다. 이후 ‘아메리칸 클래식’에 집중하며 종전의 명성을 되찾는 데 주력했다. 델 베키오는 “브룩스브라더스는 일종의 유산”이라며 “수백 년 뒤에도 좋은 브랜드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딱딱한 양복 대신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통산업의 축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코로나19까지 발생하면서 손실이 누적됐다. 이 회사 부채는 현재 5억~1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대변인은 “새 인수자를 계속 찾겠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의 브랜드’ ‘월스트리트의 유니폼’ 등 별명을 얻을 만큼 오래 사랑받았던 브룩스브라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소식에 많은 미국인이 아쉬워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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