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문명과 야생을 가르는 걸음걸이의 차이

입력 2020-07-10 17:49   수정 2020-07-11 00:08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통찰력과 유머를 겸비한 작가다. 2016년 타계할 때까지 성찰적 지식과 미학적 감성으로 세상을 그렸다. 파리 근교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한 미국 기자가 찾아왔다. 기차역까지 차로 마중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은 암소 떼를 만났다. 소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던 중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네발짐승은 아주 판이한 두 가지 방식으로 걷습니다. 측대보(側對步)와 대각보(對角步)가 그것이죠. 측대보는 오른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이 동시에 나가는 방식이고, 대각보는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함께 나가는 방식이죠.”

내심 놀란 그가 “저 암소들은 대각보로 걷고 있군요”라고 말하자 그 기자가 말을 이었다. “아직 동물학자들이 다 밝혀내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만, 개나 소 같은 가축은 대부분 대각보로 걷습니다. 반면에 야생의 네발짐승은 측대보밖에 몰라요. 가축의 걸음걸이를 측대보에서 대각보로 바꿔놓은 것은 인간의 존재, 어떤 문명효과가 아닐까 싶어요.”

그날 이후 그는 네발짐승을 유심히 살폈다. 새로운 관찰은 새로운 통찰로 이어졌다. 그의 관찰 결과 이상적인 걸음걸이는 역시 대각보였다. 코끼리나 낙타처럼 몸을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다른 쪽으로 기울이며 뒤뚱거리는 측대보보다 대각보가 더 균형 잡힌 걸음걸이였다.

그는 이 같은 성찰의 결과를 ‘측대보와 대각보’라는 에세이로 써서 산문집 《예찬》에 실었다. 그는 에세이에서 “땅바닥이 고른 평지에서는 대각보로 걷는 것이 유리하고, 울퉁불퉁하거나 바위가 많은 경사지에서는 측대보가 낫다”며 “측대보는 야생의 걸음걸이요 대각보는 문명의 걸음걸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가축이라도 말의 경우에는 두 가지 특성이 다 드러난다. 인간에 의해 품종 개량이 오랫동안 이뤄졌기 때문이리라. 말의 걸음걸이는 평보로 천천히 걸을 땐 대각보, 구보로 빨리 달릴 땐 측대보다.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말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측대보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 이는 미셸 투르니에가 던진 궁극의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 눈앞에서 어슬렁거리는 동류의 모습을 관찰해보자. 명백한 대각보다. 아이들도 네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대각보를 취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두 팔로 측대보를 흉내 내며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면에 상당한 분량의 야성을 감추고 있다”며 특유의 해학을 발휘한다. 군대에서 제식훈련 때 이런 자세로 걸으면 ‘관심병사’로 찍히는 것과 같다.

그의 위트는 글의 끝부분에 나오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얘기에서 한 번 더 번뜩인다. 그는 “로댕은 그 사람의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팔꿈치를 고이도록 해 온통 뒤틀린 자세로 만들어 놓았다”며 “이 자세를 흉내 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배가 나온 사람은 절대 따라하지 말라”는 유머를 덧붙인다.

그러고 보니 ‘생각하는 사람’은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신곡》 중 ‘지옥의 문’을 묘사한 조각이다. 인간의 온갖 고통과 번뇌를 내려다보는 이 조각상의 모델은 ‘고뇌하는 시인’ 단테다.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의 팔 사이가 두 발보다 넓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다리와 팔, 걷는 방식, 문명과 야생 등 많은 분야에서 드러난다. 문명(civilization)의 어원이 한곳에 모여 사는 시민(civil)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혼란과 갈등, 대립과 마찰의 야생 사회에서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뒤뚱거리는 측대보’보다 ‘안정적인 대각보’가 필요하다. 이를 조절하는 인간 문명의 뿌리 역시 ‘육체적 걸음걸이’를 넘어선 ‘생각의 걸음걸이’에서 나왔다.

자고 나면 격변이 일어나는 요즘,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을 다시 읽으며 위태로운 비탈길에 선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몰이사냥처럼 거친 '측대보 정치'로는 파국만
“문명은 화가 난 사람이 ‘돌’을 던지는 대신 최초로 한마디 ‘말’을 하는 순간에 시작됐다.”(지그문트 프로이트)

한 사회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돌’로 상징되는 야생의 쟁투가 아니라 ‘말’로 집약되는 소통과 협력이다. 거칠고 야만적인 행동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놓는다. 최근 우리 사회를 격랑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정치적 행태도 그렇다.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 진영을 사냥꾼처럼 몰아붙이고, 정제되지 않은 거친 주장을 경쟁적으로 내뱉고 있다.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고 뒤뚱거리는 ‘측대보 정치’의 결과는 ‘말’이 아니라 ‘돌’이 되어 돌아오기 쉽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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