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K보톡스' 집안싸움…균주 도용 놓고 업계 줄소송 예고

입력 2020-07-12 17:53   수정 2020-07-13 01:16


‘5 vs 17’. 해외와 국내 보툴리눔톡신 기업 수다. 미국 엘러간이 1989년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처음 내놓은 이후 독일 프랑스 중국 등에서 경쟁자들이 나왔다. 피부 주름 개선 등 노화를 막는 미용 치료제로 주목받으면서다. 국내에선 메디톡스가 미국에서 들여온 균주로 2006년 첫 국산 제품을 내놓은 이후 ‘보톡스 전쟁’이 벌어졌다. 메디톡스가 1000억원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자 휴젤 대웅제약 등 국내 기업들이 속속 뛰어들면서다.

하지만 인명 살상용에 쓰일 정도로 치명적인 독소인 보툴리눔톡신을 어떻게 한국 기업들만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 논란이 됐다. 급기야 메디톡스가 미국에 진출한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를 훔쳐갔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고 지난 6일 예비판결에서 승소했다. 메디톡스는 국내 다른 보툴리눔톡신 업체를 대상으로도 균주 도용을 의심하고 있어 소송전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균주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균을 일컫는다.
커져가는 미용 시장, 저렴한 생산비
엘러간이 보톡스를 출시한 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해외에서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업체는 5곳뿐이다. 프랑스 입센, 중국 란저우, 미국 솔스티스, 독일 멀츠 등이다. 국내에는 제품 판매업체만 5곳이다. 수출 허가를 받은 업체는 4곳이 더 있다. 균주 등록을 마치거나 제품 개발에 나선 곳을 포함하면 17곳에 달한다.

국내 업체들이 보툴리눔톡신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것은 균주만 확보하면 수익을 내기 쉬워서다. 제품 한 병에 쓰이는 균주의 양은 10억분의 1g 수준에 불과한 데다 균주만 확보하면 이를 배양해 계속 생산할 수 있다. 국내 업체 수가 늘면서 2000년대 초반 80만원 수준이던 제품 가격(100유닛 기준)은 최근 2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생산 비용이 저렴해 영업이익률이 30%는 나온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후발주자로 보툴리눔톡신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은 “미용 시장이 유망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시장 규모는 1200억원 수준이지만 글로벌 시장이 5조3776억원(2018년 기준)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K뷰티 바람을 타고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이 시장에 뛰어드는 배경이다.
출처 불명확해도 균주 등록
한국이 ‘보톡스 강국’이 된 배경은 손쉬운 균주 확보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툴리눔균은 일상에서 발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균이다.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운 좋게 균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보유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보툴리눔균은 0.00007㎎만으로도 성인 남성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생물테러 감염병 병원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선 보툴리눔톡신 관리를 엄격히 한다. 미국은 보툴리눔 균주 관리 책임자의 설비 상태는 물론 미생물 관련 연구 이력, 범죄 이력, 정신질환 유무 등을 확인한 뒤 균주 관리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국내에선 감염병예방관리법이 지난달 시행되기 전까지는 균주 등록이 신고제로만 이뤄졌다. 균주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도 됐다. 미국에서 균주를 들여온 메디톡스가 2006년 첫 제품을 출시한 이후 휴젤과 대웅제약이 각각 2009년, 2013년 제품을 내놨다. 휴젤은 부패한 음식물에서, 대웅제약은 경기 용인시에 있는 한 마구간 토양에서 균주를 확보했다고 주장해왔다.
“기술침해 조사 강제성 없어”
메디톡스는 국내 보툴리눔톡신 업체 상당수가 자사의 균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고 있다. 균주 염기서열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기술침해 여부를 놓고 정부가 조사에 착수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메디톡스가 균주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까지 건너간 이유다.

균주 관리 논란이 일자 질병관리본부는 2017년 고위험병원체 발견 신고 시 현장조사를 의무화했다. 지난달에는 보건복지부가 균주 등록 신고제를 허가제로 전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를 마련해 염기서열 등 업체별 균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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