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묵살, 수사기관은 유출…박원순 진상규명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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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13 15:47   수정 2020-07-13 16:37

서울시는 묵살, 수사기관은 유출…박원순 진상규명 '불가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고소인 측이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특히 고소인 측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박 시장)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서울시장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미경 소장은 "우리는 투명하고 끈질긴 남성 중심 성 문화의 실체와 구조가 무엇인지 통탄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망인이 돼 형사고소 사건은 진행되지 않지만, 진상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미경 소장은 "피해자가 곧바로 고소 못한 이유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박 시장은 그럴 사람 아니다', '단순 실수로 받아드리라'고 하면서 '시장 비서의 역할은 시장의 심기 보좌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피해자는 부서 이동까지 요청했으나 이는 시장의 승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속옷차림을 한 (박원순 시장) 본인의 사진과 늦은 밤 비밀 텔레그램 방을 통한 음란 문자 전송 등 가해 수위가 심각해졌고, 심지어 부서를 이동한 후에도 계속된 사적인 연락을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 입장발표로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순 시장은 사망해 처벌할 수 없지만 피해자 신고를 조직적으로 묵살한 서울시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고소 내용이 실제로 유출됐다면 이를 유출한 수사기관 관계자도 처벌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사망 원인이 성추행을 인정한 것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문제 제기는 있을 수 있지만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고 박원순 시장이 가해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며 "섣부르게 예단할 시점은 아니고 차분히 따져봐야 될 문제 아닌가"라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권에서는 박원순 시장 죽음과 관계없이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음(아래)은 고소인 입장문 전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했습니다.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처음 그때 저는 소리 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제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습니다.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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