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공장 경매…불 꺼지는 공단

입력 2020-07-15 17:36   수정 2020-10-06 15:46


전국 산업단지에 불이 꺼지고 있다. 제조 현장 가동률이 곤두박질치면서 공장을 팔고 폐업하는 업체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대부분 자동차 조선 기계 등 핵심 제조업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업체여서 한국의 제조 생태계가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법원경매 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공장 및 공장용지의 경매 건수는 492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405건) 대비 21.4% 증가했다. 월별 경매 건수로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관련 기자재업체가 줄도산한 2016년 10월(493건) 후 3년8개월 만의 최대치다. 통상 공장 경매 매물은 사업주가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지 못해서 나온다. 원리금 연체 발생 6~9개월 뒤 이뤄진다. 오명원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연말부터는 공장 경매 물건이 봇물처럼 쏟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시화 남동 반월 녹산 대구 구미 등 전국 55개 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처분 건수는 올 상반기 56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9% 증가했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시화공단 입주사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부분 휴업 중이거나 폐업 직전 상태”라고 말했다.

지방에선 공장 가동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지방 국가산단 중 50인 미만 업체 가동률(5월 기준)은 광양 32.3%, 대구 35.8%, 구미 41% 등이다. 격일 근무제에 이어 주 1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업체도 잇따르고 있다. 한 중소기업 전문가는 “많은 중소기업이 코로나19 관련 정책자금 지원과 금융권의 만기 연장으로 버티고 있다”며 “10월부터 다시 원금과 이자를 갚도록 한다면 추석 이후 무더기 파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週 하루 돌리며 말라가는 공장들
공단마다 가동률 30~40%대…공장 폐업매물 속출
1만 개가 넘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경기 시화공단 도로변에는 ‘공장 급매’ ‘공장 임대’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이 공단에서 기계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최근 야반도주하는 사장들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전날 저녁 6시까지 일하고 다음날 출근해보니까 사장과 기계설비가 없어진 사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년엔 시화공단 입주 업체 중 3분의 1가량이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흉흉하게 떠돈다”고 전했다.
눈물의 폐업 세일
국내 중소 제조기업 2만5000여 개가 집결한 시화·반월·남동공단엔 ‘개점 휴업’인 업체가 상당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친 탓이다. 시화공구상가사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공장에 필요한 각종 공구와 자재 등을 납품하는 조합 소속 1000여 개 업체 가운데 20~30%는 최근 몇 달간 매출이 전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하는 김모씨는 “폐업에 따른 매물도 있지만 업체들이 생산 규모를 줄이면서 생겨난 공장 물건도 많이 나온다”며 “공장 1층 평당 임대료가 2만6000원에서 2만2000원대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부품, 전자부품 공장은 대부분 폐업하고 그나마 코로나19 사태로 호황을 맞은 마스크 관련 공장들이 빈자리의 일부를 채우고 있다”고 했다.

경남 함안지역 한 공단에선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지은 1만6528㎡(약 5000평) 부지에 건평 6611㎡(약 2000평) 규모 공장과 내부 공작기계 설비가 최근 40억원대에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평당 100만원도 안 되는 헐값이란 평가다. 경북 고령군에 있는 1283.5㎡(약 388평) 규모 공장도 다섯 번 유찰을 거친 끝에 감정가(47억원)의 19% 수준인 9억원에 매각됐다.

전국 55곳 국가산업단지에서 올 상반기 처분된 공장은 566개에 달한다. 하지만 ‘잠재 매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관측이다. 대부분 중소기업 사장들이 공장 담보가치의 70~80% 정도까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데다 신용대출까지 끌어 쓴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공장도 마음대로 팔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버틸 만큼 버티다 결국 폐업 수순을 밟는 업체들의 매물이 연말께 쏟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 공단은 ‘황폐화’
지방공단의 위기감은 수도권보다 크다. 한 중소기업단체 대표는 “경남 함안군 인근 공단 2500여 개 공장 가운데 제대로 가동되는 곳은 1000여 곳뿐”이라고 전했다. 경북에서 볼트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대구지역 실질 가동률은 30%를 밑돌고, 부산은 25%도 안 된다”며 “격일제 근무를 해오다 요즘엔 아예 주 1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울산지역에선 공장들이 조업일수를 줄이면서 이들에 도시락을 공급해온 업체들의 폐업도 줄을 잇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 부품사와 조선기자재업체들이 밀집한 울산·미포 국가산업단지의 경우 지난 5월 총생산은 전월보다 8800억원(11.1%), 수출은 4350억원(14.5%) 급감했다.

이들 공단의 쇠락은 국가 제조업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어려움을 겪는 지방 중소기업 가운데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기업이 많고,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곳들도 있어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는 “한국 경제의 근간은 제조업이고 뿌리는 중소제조업”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디지털 뉴딜과 서비스산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전통 제조업 육성 없이는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가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을 해외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제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정책적으로 조성해야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이 계속 오르고,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제조업 경쟁력이 사라졌다”며 “대표이사 형사처벌 조항이 대폭 신설되면서 ‘담장위를 얻는 것’같다는 기업인들이 많아졌고 기업인들의 의욕도 꺾이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가업승계도 외국에 비해 규제가 심해, 독일과 일본과 같은 기술 장수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을 역임한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가 강조하는 스마트 일자리는 대부분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전통제조업보다 고용친화적이지 않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제조업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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