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확실할땐 '피해자', 가해자 극단적 선택하면 '피해 호소인'?

입력 2020-07-15 20:35   수정 2020-07-15 23:50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 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해 호소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려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줄 것을 부탁드린다”(청와대)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직원에 대한 2차 가해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서울시 대변인)

"피해 호소인께 진심으로 송구하다."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사라졌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쳐온 당정청에서는 대신 유례없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태 당시에는 '피해자'라 명하던 민주당이 갑자기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윤정 민주당 대변인은 "수사가 종결됐기 때문에 고소인이라 쓸 수가 없으며 법적 자기방어 할 가해자가 없기 때문에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미래통합당 중앙여성위원회는 "‘책임통감’, ‘통렬한 사과’를 언급하면서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고, 당사자의 죽음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당대표의 유체이탈 자기부정적 태도로 일관했다"면서 "이는 그동안 여성문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언행들이 오직 자신들의 정권유지기반과 득표수단으로 여성을 이용한 음흉한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피해 호소인에는) 피해자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진 교수는 고인의 부재로 진상규명이 어렵다는 이해찬 당대표의 사과에 대해 "속지 말라. 저 인간들 사과하는 게 아니라 지지율 관리하는 것이다"라면서 "한편으로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고 다른 한편으로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결국 당의 공식입장은 '피해자는 없다, 고로 가해자도 없다.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인의 부재'로 진상규명이 어렵다면 서울시는 무슨 재주로 진상을 규명하나"라며 "그 사과를 다시 하라. '피해자'는 없고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만 있는데 왜 사과를 하나"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사과는 피해자에게 하는 것이지 '피해 호소인'에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분 이름을 공개하라"라고 분노했다.

진 교수는 "얄팍한 잔머리로 국민을 속이려 하는 게 아주 저질이다"라며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2차 가해'로 규정하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故)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 A씨 측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서로 재직했던 4년간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미투’ 사건을 목격하고도 성추행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A씨는 8일 박 시장을 성폭력특례법 위반(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고소 당일 진행된 고소인 조사는 이튿날 새벽 2시30분까지 이어졌다. 박 시장은 A씨 조사가 끝난 9일 오후 실종됐고 극단적 선택 끝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정무비서에 대해 위력에 의한 성폭행을 가했다는 혐의로 수감 중인 안희정 전 지사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물론 교도소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안 전 지사는 피감독자간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안 전 지사와 달리 비겁한 선택을 한 박 시장의 명예는 민주당에 의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그들에게 영원히 박 시장의 성추행에 의한 '피해자'는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그에 대한 명예훼손을 목적으로 해서가 아니다.

책임 대신 죽음을 택하고 피의자로 조사조차 한번 받지 않은 채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으로 애도 속에 떠나간 박 시장의 사례를 접한 숨어 있는 피해자들. 민주당은 과연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성폭력 폭로라는 용기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피해 호소인’.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우아한 2차 가해’다"라며 "총선 결과에 도취한 그들에게 고통당한 여성에 대한 공감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등 떠밀려 나온 이해찬 대표의 사과는 안하니만 못한 변명에 불과했다"면서 "절망속에서 용기를 낸 피해 여성에 폭력을 가해서라도 이분들은 故 박원순 시장, 오거돈 전 시장을 뒤이을 선거에 이기겠다는 궁리 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내에선 당헌당규를 개정할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박 전 시장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자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다. 오 전 시장이 스스로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퇴한 마당에 후보를 낼 경우 역풍(逆風)이 우려된다는 의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하던 2015년 신설된 당헌 조항을 거스르는 것도 부담으로 꼽혔다.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추가돼 빅이벤트가 되면서 민주당 분위기는 "어떻게든 후보는 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김은혜 대변인은 "공소권이 없다고 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절규하는 약자를 짓밟는 도덕의 붕괴, 상식의 파괴를 저지르더라도 권력의 단맛을 놓지 않겠다는 오만을 지금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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