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잔·고흐…인상파 가치 알아본 미술상

입력 2020-07-16 18:01   수정 2020-07-17 02:57

1890년까지만 해도 인상파는 프랑스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가들의 걸작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거래됐다. 마네의 ‘자샤리 아스트뤼크의 초상’처럼 비범한 작품도 1000프랑이면 비싸다고들 했다. 르누아르의 누드화는 250프랑을 불러도 보려는 사람조차 없었다. 세잔의 그림은 대작도 100프랑, 소품은 40프랑에 불과했다. 회화, 도예, 조각 등 여러 장르에 능했던 고갱은 뤽상부르미술관에 ‘마리아를 경배하며’를 기증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그해 작은 화랑 뤼니옹아티스티크에서 미술 관련 일을 시작한 스물네 살의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달랐다. 1880년대부터 당대 미술시장의 중추였던 살롱 전의 권위가 쇠퇴하고 있음을 간파한 그는 인상파 작품에 주목했다. 1893년 9월 파리 라피트거리에 자신의 첫 화랑을 연 볼라르는 세잔, 고흐, 고갱, 르누아르, 모네 등에 관심을 보이며 아방가르드 미술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볼라르가 만난 파리의 예술가들》은 1939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리 화단을 이끄는 미술상으로 활약한 볼라르의 자서전이다. 1936년 ‘어느 화상의 회고록’이라는 원제로 출간된 책을 처음으로 완역했다.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령 레위니옹섬에서의 성장기 외에는 파리에서 화상으로 일하면서 접한 화가들과 화단의 이야기와 에피소드, 화상으로서의 투자법 등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인상파 작품에 대한 화단의 초기 반응은 냉랭함을 넘어 적대적이었다. 1895년 볼라르가 ‘엑스(엑상프로방스)의 거장’ 세잔의 전시회를 열었을 때였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앞에서 한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그림으로 상까지 받은 나한테 이런 걸 왜 보라고 하는 거야?”

반 고흐에 대해서는 더했다. 가장 대담한 수집가들도 그의 작품을 사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물감장수 탕기 영감은 인상파 작가들에게 외상을 줬고, 혁신적이고 반항적인 화가들의 수호자가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전의 결과를 일궈낸 볼라르의 사업 수완이 흥미롭다. 마네가 죽은 후 그의 데생 작품이 무더기로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볼라르는 대뜸 마네의 집으로 달려가 대가의 크로키 일체를 매입했다. 그는 작은 전시회를 열었고,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볼라르는 승승장구했다. 1895년 반 고흐 전, 1901년 피카소 전, 1904년 마티스 전 등을 잇달아 성공시킨 것은 위대한 화가들을 남보다 앞서 알아본 결과였다. 그는 세잔과 같은 무명 화가를 후원하며 친분을 다졌다. 피카소는 19세 때 처음 만나 전속 계약을 맺었다. 무명의 작가를 싼값에 후려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인상파의 주요 화가들이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드가, 세잔, 르누아르, 마네, 데부탱 같은 화가와 평론가들이 자주 모였던 몽마르트르의 누벨 아텐 카페, 1차 세계 대전 후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볼라르의 아파트 지하 식당 단골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작품을 사고팔거나 맞교환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신경전과 작가들의 민낯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세잔과 마네의 껄끄러웠던 관계, 르누아르와 드가의 알력, 마네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막시밀리안의 처형’이 처남에 의해 박대를 당하다 급기야 잘려서 팔리게 된 운명 등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볼라르는 유명 작가들의 판화집을 여럿 제작한 출판인이기도 했다. 또 작가로서 르누아르, 드가, 세잔의 전기를 집필했다. 번역서를 감수한 미술사학자 박재연 씨는 “볼라르는 그림을 팔아 돈도 벌고, 명성도 얻었으며, 미술사의 동시대적 흐름에도 한몫한 위대한 미술상”이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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