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의 나라 고려…무역대국·외교강국 이뤄[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입력 2020-07-19 08:00  


세계질서에서, 특히 해양으로 둘러싸인 동아지중해에서는 해양력의 강약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가른다. 해양세력과 제휴하고 해양산업을 일으킨 한국은 대륙세력이지만 폐쇄적인 북한과 벌인 경쟁에서 승리했다. 우리 역사 속의 국가들도 해양력 강화 정책을 추진할 때 부유했고, 문화가 뛰어났다.

고려의 조선술

고려는 분단된 중국 지역과의 동시등거리 외교를 성공했다. 만주무역권, 화북무역권, 강남무역권, 광동무역권과 무역을 하며 더불어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지역과도 간접무역을 벌여 국부를 창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산업발달과 함께 해양활동 능력이 있었다.

기록들을 보면 고려에는 민간선박과 상선들 외에도 군선 무역선 조운선(哨馬船) 등이 있었다. 북송 말년인 1122년에 고려에 사신단으로 온 서긍(徐兢)은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는 책의 주즙(舟楫)편에서 고려의 배를 순(시)선, 관(용)선, 소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커다란 송방, 일종의 누선인 막선 등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조선술이 보잘것없다는 표현으로 기술했다.

정말 그럴까? 해양의 나라 고려는 500년 역사에서 해군력과 조선술이 발달할 수 있는 5번의 계기를 맞이했고, 잘 활용해 역사의 성공을 이뤘다.

첫째, 초기 왕건의 수군이 후백제 수군과 실질적으로 해전을 벌일 때이다. 둘째, 동해안과 일본연안을 약탈하던 여진해적을 토벌할 때이다. 셋째, 송나라와 빈번한 외교교섭, 활발한 상업, 공동군사작전을 벌일 때이다. 넷째, 여몽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사용한 대군선들을 건조하고 전투를 벌였을 때이다. 다섯째, 동아시아 세계에 등장한 거대한 해적집단인 왜구를 토벌할 때이다(윤명철, 《한국해양사》 , 2003년).

건국자인 왕건은 ‘해군대장’·‘백선장군’의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제독이었다. 전형적인 해양세력이었다. 그가 초기에 사용하던 큰 배 10여 척은 각각 사방 16보요, 위에 다락을 세우고, 말을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방이 16보라면 약 20m 정도로 대형돛대를 몇 개 설치한 큰 함선이다. 일본의 역사책인 《백련초》에는 고려가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쓰시마와 규슈 지역 지역의 방비를 강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고려는 규슈 지역을 침략했고, 서경인 다자이후(大宰府)는 고려 병선 500척이 침공하려는 정보가 있음을 조정에 올렸다.

여진 해적들의 바다로 변한 동해

11세기에 들어오면서 동해는 여진해적들의 발호로 혼란스러웠다. 만주의 해륙국가인 발해가 멸망하자 동만주와 연해주 일대, 동해 북부해상에는 일시적으로 정치적인 공백 상태가 됐다. 도이(刀伊)라고 불리는 동여진의 해적들이 등장했다. 필시 발해의 해양능력을 계승했을 도이들은 해적선을 타고 동해연안을 내려와 1005년에는 등주(강원도 안변 일대)에 침입했고, 1011년에는 무려 100여 척에 달하는 배를 타고 경주까지 침범했다. 1012년에는 경상도 해안의 곳곳에 상륙해 민가를 노략질한 후에 도주했고, 1015년에는 다시 20여 척의 배로 침범했다. 마침내 1018년에는 울릉도가 침략을 받아 해적에게 항복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여진 해적들은 다음해에 대마도와 이끼섬, 규슈 북부의 해안지대인 하가다 해안까지 습격했다. 신라해적들로 고통받았던 일본조정은 경악해 이를 고려 해적들의 소행이라고 의심했다. 고려는 심각성을 깨닫고 해적선을 소탕한 후에 일본인 포로들을 구해, 본국에 돌려보냈다.

고려의 동해 함선
고려는 국가정책으로 해적 대응책을 강구했다. 동해안의 원흥진(함경남도 정평)과 진명진(원산)에 ‘선병도부서(해군함대 기지에 해당함)’를 설치했고, 예하부대로서 진(鎭)과 수(戍)에 수군을 뒀다. 그리고 해군력의 핵심인 함선 건조에 돌입했다. 1008년에 처음으로 과선(戈船)이라는 신형군함을 75척 건조했는데, 선체의 곳곳에 창을 꽂아 근접전을 펼 때 적병들이 갑판 위로 뛰어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접근이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에는 쇠로 뿔(충각)을 부착시켜 적선과 충돌시켜 선체를 깨뜨려 침몰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약 70여 명 정도가 승선하며, 적재용량은 1000석 정도라고 한다. 일본책인 《소우기》에 따르면 고려배는 선체는 높고 크며 다락집은 좌우에 각각 넷을 세웠다.(오봉근, 《조선수군사》)

고려는 1050년에는 전함 23척을 이끌고 초자도의 여진 해적을 공격했다. 1107년에는 육군과 협동으로 해륙양면작전을 벌이면서 북쪽에 있는 여진 해적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동해에서 활용한 이 전투선들은 높고 거친 파도, 편북풍 계열의 바람, 원양항해구역 등 동해의 해양환경과 여진족의 배·무기·전투방식을 고려해 만든 전선이었다. 필시 파도와 폭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선체가 단단하고, 능파성이 강하도록 크기는 적은 대신 폭이 좁고, 길쭉한 형태에 돛대가 적은 형태였을 것이다. 고려 말에 검선(劍船)이란 이름을 가진 배가 등장하는데, ‘칼(劒)’을 꽂아놓은 것 같은 의미로 보아 기능과 형태는 과선과 유사한 전선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러한 배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구선(龜船)으로 발전했다. 이어 이순신에 의해 성능이 개량되면서 거북선이 됐다.

세계 최고의 송나라의 조선술을 수용…개량

고려인들은 머리가 좋고, 해군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자체의 조선술이 뛰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필요성과 시대상황을 고려한다면 송나라의 조선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고려와 송나라는 서해와 동중국해를 공유한 채 공적인 외교교섭뿐 만 아니라 공무역, 민간무역이 활발했다. 그런데 해양문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모방성과 공유성이다. 같은 해역을 공유하고 때로는 운명 공동체인 만큼 기술자 집단이나 운행자 집단들 간에는 기술력과 지식(항법), 경험(해상상태 등)을 공유하거나 빠른 시간에 모방한다.

송나라가 건조한 배들은 그 무렵에는 세계에서 최고의 수준이었다. 한 예를 들면 ‘서긍’이 속했던 송나라의 사신단은 주력선인 2척의 신주와 보좌선인 6척의 객주로 구성됐다. 그런데 객주는 길이가 30m, 높이가 9m 폭이 7.5m이고, 주 돛은 높이가 30m에 달한다. 곡식 2000섬(1섬은 10말)을 실을 수 있었고, 신주는 그 3배에 달하는 거함이었다. 그런데 인도양을 지나 페르시아만을 왕복하는 송나라 배들은 선원이 4~500명에 달하고, 큰 배는 1000명 이상이 승선했다. 나침반을 갖춘 이 배들은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올 때를 빼놓고는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현재 요트와 거의 같은 수준의 운항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 해저유물선은 원나라의 것이지만 송 선박을 그대로 계승했다. 배 밑바닥이 V자형인 첨저선(尖低船)으로, 길이 30여 m, 깊이 9m, 너비 5.5m이다. 돛대는 앞뒤로 2개인데, 앞 돛은 24m, 뒷 돛은 30m이다. 주 돛의 위에는 야호범(野狐帆)이라는 보조 돛을 달았는데, 이는 풍향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뒷바람 뿐 만 아니라 옆바람까지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술과 항해술 등 해양력을 강화한 고려는 유라시아 세계질서의 중심이 된 몽골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됐다.

지금 인도·태평양 세계의 헤게모니를 놓고 미국과 중국 간에는 해양력 경쟁이 전방위로 갈등과 충돌을 빚고 있다. 동남아지중해(남중국해)와 동아지중해에서는 8개 해역에서 군사적인 충돌을 수반한 영토갈등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중국과 이어도(중국 측은 蘇巖礁·丁巖)문제, 일본과 독도문제, 러시아와 녹둔도 문제, 그리고 ‘제7광구’ 문제가 직접 연관이 있다. 또한 해양의 특성상 중·일 간의 센카쿠 즉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 러·일 간의 북방 4개 도서(남쿠릴 4개 섬) 문제도 우리의 안보와 경제 상황에 연결된다.(윤명철, 《동아시아의 해양영토분쟁과 역사갈등의 연구》)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의 2011년 시진핑의 ‘신형대국관계’ 주장과 계속되는 항공모함들의 취역, 일본의 급속한 해군력 증강과 경함모인 이즈모함의 취역 결정 등이 실행 중이다.

강력한 해양력을 바탕으로 무역대국, 외교강국, 정치강국을 이뤘고, 원나라와의 40년 대결, 삼별초의 3년 항전, 그리고 여·몽 연합군의 주력으로 일본공격 등을 실천한 나라 고려. 고려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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