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45)·끝] 완벽주의와 위험감수 문화

입력 2020-07-20 17:59   수정 2020-07-21 00:11

중국의 문필가 린위탕(林語堂)이 자신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말했다. “미국 편집자는 자기가 편집하는 신문, 잡지에 오식이 하나도 없도록 뼈를 깎아가며 애를 쓴다. 중국의 편집자는 더 현명하다. 독자 스스로 다소의 오식을 발견해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짓도록 내버려둔다. (중략) 미국 기사가 다리를 놓으려면 세밀하고 정확하게 산출해 양쪽 기슭에서 시작한 다리가 한복판에서 1인치의 10분의 1도 오차가 없도록 한다. 그러나 두 중국인이 산 양쪽에서 터널을 파기 시작하면 양쪽이 다 제각기 판다…. 그게 무슨 큰일인가. 하나가 될 것이 둘이 된 것이니 더욱 좋지 않은가.”

2019년 1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의 탐사선은 달 앞면에만 착륙했다. 달 뒷면의 지형이 험난하고 지구와 직접 통신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달과 지구 사이에 통신 중계 위성을 띄워 문제를 해결했다. 우주 기술은 최첨단 기술과 완벽주의의 상징이다. 앞서 중국인의 삶에 녹아 있는 여유의 멋을 찬양했던 린위탕도 이 소식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완벽주의는 인류 문명을 이끌어온 동력이다. 인류 역사에서 성공한 사람 중에 완벽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드물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주의였다. 신제품 설명회 때면 연설 문장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동선과 제스처까지 철저하게 계산해 대비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도 전형적인 완벽주의자였다. 디테일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함으로써 오성장군, 컬럼비아대 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한국은 완벽을 추구하는 나라"
예술 분야에도 완벽주의자가 많다. 미켈란젤로는 모세의 조각상을 완성한 후 울면서 말했다.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돌로 실제 삶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고 완벽을 추구한 그에게는 조각상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유감이었던 모양이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페라 리허설 때는 단 1분도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언젠가 한 시간만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고는 지휘를 무대감독에게 맡겼다.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돌아온 그에게 사유를 묻자 대답했다. “결혼하고 왔어요.” 프랑스 화가 폴 세잔도 완벽주의자였다.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초상을 3개월에 걸쳐 작업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현재 오르세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그의 작품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완벽주의는 능력과 성공의 동의어다. 그러나 완벽주의라는 신앙에는 단점도 많다. 가장 큰 단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다는 점이다. 완벽주의자는 실패에 대한 과도한 부담 때문에 도전을 기피한다. 과거의 작은 실수도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미래의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회피한다. 필자의 오랜 친구인 한 서방 외교관이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소회를 남겼다. “한국은 유례없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나라다.” 필자도 동의한다.
혁신은 많은 시도와 실패의 산물
한국인은 서열에 민감하다. 모든 것이 서열화되고 1등만이 대접받는다.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일찍부터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패자부활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자랄 수 없는 이유다. 완벽주의의 폐해는 영어교육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서 영어교육의 목적은 소통이 아니라 점수다. 시험을 목적으로 정확성에만 집착하다 보니 의사소통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한 전문가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하려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창조와 혁신은 많은 시도와 실패의 산물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축전지를 발명하기까지 5만 번이나 실패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홈런 714개와 2217타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의 보유자다. 동시에 역대 삼진아웃 최다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라듐은 마리 퀴리의 실수에서 나왔고, 심장병약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화이자가 비아그라를 내놓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창업 국가다. 1인당 창업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무엇보다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실패 책임을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 덕분이다. ‘1등 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보다 ‘남과 다른 사람이 돼라’고 격려하는 유대교육은 위험 감수 문화를 진작한다. 우리 사회에도 실수를 용인하고 격려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성공은 열정을 간직한 채 한 실패에서 또 다른 실패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는 45회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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