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이 원전 포기 않는 이유

입력 2020-07-24 17:42   수정 2020-10-05 19:01

“자원이 빈약한 일본은 모든 발전 수단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단 하나의 발전 수단도 포기할 수 없다.”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3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90%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는 노후 석탄발전소 114개와 신형 석탄발전소 26개 등 총 140개에 이르는 석탄발전소를 10년 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신형 위주(약 50개)로 재편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 비중을 전체의 77%에서 56%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국제사회 압력에 떠밀린 일본이 마지못해 취한 조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늦어도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선언하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3년보다 26% 줄이겠다고 약속한 일본도 이 같은 계획을 내놨다.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담당 장관이 노후 석탄발전소는 대부분 없애지만 ‘탈석탄’은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일본이 포기하지 않는 발전 수단은 또 있다. 일본 정부는 현재 17%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2~24%로 높여 화석연료 발전소의 빈자리를 메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10년간 원자력발전소 10기 분량인 1000만㎾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그렇다 해도 화석연료 비중을 56%까지 줄이려면 나머지를 채울 또 다른 수단이 불가피하다. 원자력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국 33기의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엄격한 안전기준을 통과한 9기만 재가동하고 있다. 20%를 웃돌았던 원전 비중은 6%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20~22%로 회복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30기 이상의 원전을 돌려야 가능한 수치다.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탓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새 에너지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원전 운영 방침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일본 정부의 원전 재가동 의지는 확고하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지난해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원전 비중을 22%까지 높이는 에너지 기본계획의 ‘확실한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는 고노 다로 방위상이 ‘탈원전’ 입장을 밝히자 그가 소속한 파벌인 아소파(자민당 2대 파벌)가 지지 입장을 내놓지 않을 정도로 원전 확대를 위한 자민당의 기류는 매우 강하다.

영토가 남북으로 3000㎞에 달하는 일본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다. 세계 6위의 해양 영토(447만㎢)를 가진 섬나라의 입지를 활용하면 해상풍력으로만 수천만㎾를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풍력발전 규모는 2만㎾, 비중은 0.7%에 불과하다.

원전을 버리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비용이다. 1㎾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원전은 10엔, 해양풍력발전은 30엔이 든다. 해상풍력발전소의 초기 건설 비용도 유럽의 3배에 달한다. 일본 기업들이 성장성 없는 자국 시장에서 철수해버려 건설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해야 한다.

높은 발전 비용은 전기료 인상을 부른다. 2012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고정된 가격에 사들이는 제도를 시행하자 가정과 기업의 부담이 10% 이상 늘어난 전례도 있다. 벌써부터 일본 재계는 새 에너지 정책이 전기료를 올려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숱한 논란에도 한국은 ‘탈원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원전을 포기 못 한다는 일본과 세계 최고 수준의 발전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한국의 간격은 최악을 달리는 양국 관계만큼 멀게 느껴진다.
더 엄격해진 원전 재가동 기준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20~22%로 높이려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면 중단한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 하지만 재가동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게 일본 에너지 업계의 인식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사고를 계기로 설립한 원자력규제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원전만 재가동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11기가 심사 중인데 결론이 나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곳도 상당수다. 핵심은 활단층(12만~13만 년 이내에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는 지층) 존재 여부다. 핵심 시설 바로 아래에 활단층이 있으면 재가동은 불가능하다. 주변 지역에 활단층이 있으면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인 지질 데이터를 제시해 활단층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몫은 해당 전력회사에 있다. 원전만 운영하는 민간 발전회사의 경우 재가동은 사운이 걸린 문제여서 최종 승인을 받을 때까지 끊임없이 신청하겠다는 회사도 적지 않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심사 신청을 거부할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이시카와현 시가원전 2호기는 2014년부터 7년째, 후쿠이현 쓰루가원전 2호기와 홋카이도 도마리원전 1~3호기는 2013년부터 8년째 심사가 이어지고 있는 등 사업이 정체를 보이고 있다.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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