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소 권고는 '사회적 대타협' 하라는 것…檢, 삼성 수사 멈출 때다"

입력 2020-07-26 17:39   수정 2020-07-27 01:4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 결정이 임박했다. 검찰은 이르면 오는 29일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불법 경영권 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대로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도, 혐의 범위와 기소 대상을 조정한 뒤 기소를 강행할 수도 있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재판정에 서는 것만으로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7년 4월 7일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1심에만 4개월여 동안 53차례의 재판이 열렸다. 변론 준비를 제외하고 실제 재판만 477시간 동안 이어졌다. 반면 시민단체들과 정치권 일각에선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맞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부회장과 삼성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경제계 원로들을 찾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 소설가 복거일 씨 등이 검찰과 법조계, 삼성 등을 겨냥한 고언을 내놨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기”라며 “죄가 나올 때까지 질질 끄는 기업인 수사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것 이상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는 게 중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의도를 깔고 죄가 드러날 때까지 기업을 법률 리스크에 노출시키는 것은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법조계·정치권 인사들이 기업인에게 좋지 못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에선 정치적인 이유로 기업을 공격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가 국제 금융업계에서 나온다”며 “대기업 오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깔고 법을 집행하기보다는 공정한 잣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은 주주 구성이나 사업 범위로 보나 글로벌 기업”이라며 “국제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은 법률 리스크 때문에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고 지적했다. 전 전 위원장은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오너 경영자 특유의 도전 정신이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삼성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쏟아붓는 통 큰 결정을 전문경영인이 할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던 1997년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맡기면서 ‘투자하는 3000억원을 다 까먹어도 좋다’고 했다”며 “이 회장이 ‘진 박사가 맡아서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고 등을 두드려준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산업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오너 경영”이라며 “이제 와서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 전 장관은 “기업인이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급선무”라며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그는 사모펀드(PEF)인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특임교수(前고려대 총장)는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수사와 재판을 오래 끄는 것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요즘 같은 힘든 시기에 기업인을 벌주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분명한 것은 기업의 의사결정 공백을 감안해 수사와 재판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너 경영자에 대해선 “전통적으로 한국 기업의 조직 구조는 총수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며 “총수가 없으면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에 문제가 생긴다. 총수가 없으면 경영이 어려워지는 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수를 벌하는 것보다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오너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법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오너 경영자를 “운명적으로 회사를 맡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전문경영인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1~2년 안에 결과가 나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위험을 감당하며 통 큰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법률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이제 검찰이 멈출 때가 됐다”고 말했다. 황 전 회장은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대국민사과를 하고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사회의 눈높이를 맞춰 나가고 국가는 이 부회장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리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삼성물산이나 제일모직 같은 거대한 회사의 주가를 오랜 기간에 걸쳐 조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찰이 다소 무리해서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황 전 회장은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을 거쳤다.

작가이자 시사평론가인 복거일 씨는 “오너 경영자의 본질적인 역할은 위험 관리로,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총수의 역할은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것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돌발 사건뿐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 등 긴 호흡의 변화까지 감안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삼성에서 이를 할 수 있는 인물은 결국 이 부회장 단 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과 인연이 깊다. 2014년 한국경제신문을 통해 ‘삼성이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한 글을 꾸준히 연재했다. 같은 해 9월엔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당시 복씨는 “이 부회장이 ‘꿈’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회장이 법률 리스크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처럼 구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꿈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송형석/황정수/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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