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지자체 포퓰리즘…농사만 지으면 주는 돈 3兆

입력 2020-07-27 17:31   수정 2020-10-05 15:47


지방자치단체가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민수당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남과 충남에 이어 오는 9월 전북에서도 농민수당이 처음 지급된다. 다른 도에서도 내년도 지급을 목표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가 농민수당을 도입하면 한 해 예산만 6000억원에 이른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20~30%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재원 마련 대책 없이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농민수당 지급 현황과 계획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9월 전남 해남군이 처음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한 이후 농민수당을 주는 지자체가 빠르게 늘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지자체가 지급하는 돈이다. 통상 1년에 한 번 농가 단위로 지급되며 지급액은 연간 60만~80만원이다.

전남이 올 5월 60만원, 충남이 같은달 45만원을 지급했다. 전북은 9월 6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며 충남은 하반기에 2차로 35만원을 추가로 주기로 했다. 내년에는 강원이 연 60만~70만원 수준에서 지급하기로 했으며 충북 경기 제주 경남 경북 등도 2021년 이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20~40%로 낮다는 점이다. 지자체는 재정의 절반 이상을 중앙정부에 의존하는데도 광역지자체별로 수억원을 무차별 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앙정부도 농민에게 공익형 직불금으로 한 해 2조4000억원을 지급하고 있어 농민수당까지 합치면 농민에게 나가는 돈만 3조원에 이른다.
"농민이면 무조건 年 60만~120만원"…'농촌판 기본소득' 전국 확산
농민수당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는 건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가 재정자립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농민단체의 요구에 따라 지급을 속속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급이 결정되지 않은 지역의 농민들이 관련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이미 지급하기로 합의한 곳에서도 증액 요구가 나오면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농민수당
농민수당은 지난해 9월 전남 해남군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어 강진 함평 등 전남지역 기초지자체로 퍼졌다. 올해는 광역지자체로 확대되고 있다. 전라남도는 1459억원을 들여 지난 5월 24만3000농가에 60만원을 지급했다. 충청남도는 132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같은 달 16만5000농가에 1차분 45만원을 지급했다. 하반기에 2차로 35만원을 더 준다. 전라북도는 오는 9월 6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전북지역 농민단체들은 농민수당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농민수당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강원도와 제주도, 경상남도는 농민수당 지급 근거가 담긴 조례를 통과시켰다. 경기도는 아예 모든 농민에게 수당을 주는 농민기본소득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조례안이 제정되지 않은 곳에선 농민들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충북도청 앞에서는 트랙터 등 농기계를 동원한 농민들의 시위가 열렸다. 광역시 중에선 광주에서 농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경북과 경기 등에선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지급이 시작됐다. 경북 청송군은 지난 3월 50만원을 지급했고, 경북 봉화군과 경기 여주시는 하반기에 각각 70만원과 60만원을 줄 예정이다.

문제는 이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20~40%대로 낮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농민수당 지급을 결정한 전라남도가 28.1%로 최하위이며, 전라북도는 30.1%, 충청북도는 34.8%다. 중앙정부 돈으로 지자체가 생색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재원 확보 없이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농민수당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수가 급감하면서 중앙정부가 내려보내는 지방교부금 등이 4조1000억원 감액됐다.
중복 지급 문제도 제기
각 지자체가 농민수당을 도입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다. 농민이 공익을 담당하기 때문에 수당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중앙정부가 도입한 ‘공익형 직불제’와 중복된다. 공익형 직불제 역시 농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농민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기존의 직불금 제도를 통합·개편한 것으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예산은 작년(통합 전)보다 1조1000억원 증액돼 2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농지면적 0.5ha 이하 농가에는 면적과 관계없이 연 120만원의 소농직불금을 주고 그 외 농업인에게는 면적별 단가를 적용한 면적직불금을 지급한다. 공익형 직불제의 취지에 맞게 환경보존, 농촌 유지 등 17개 항목의 의무도 부과된다. 농민수당 지급에 아무런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일부 지자체가 부족한 재원을 기존 예산에서 끌어오면서 정책 목표가 희석된다는 지적도 있다. 충청남도는 농민수당 지급을 시작하면서 농업환경실천사업 예산을 모두 농민수당으로 돌렸다. 기존에는 마을환경 개선, 비료 사용제한 등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한 농가에 지급하던 예산이 이제는 이와 무관하게 일괄 지급된다.

상당수 주민이 도시민인 경기도에서는 도농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도시민들에게 걷은 세금으로 농민을 지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도민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서다. 지난 5월 원용희 경기도의원은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농민기본소득은 경기 전체 인구의 3% 안팎을 차지하는 특정 직업군인 농민이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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