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렬 벡터 없애놓고 AI 인재 육성? 기가 막힌다"

입력 2020-07-29 17:51   수정 2020-07-29 20:10

"회사 내 문과 전공 직원들을 위한 수학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굉장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런 교육이 확산된다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유봉석 네이버 뉴스서비스 총괄 전무가 29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1기 수학·과학 교육 발전협의체' 발족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마련한 이번 행사는 인공지능(AI) 기술의 토대인 수학, 과학 교육 과정이 초·중·고 현장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된 행사다.

유 전무는 "AI 등 IT(정보기술) 서비스의 가장 기초는 수학과 과학"이라며 "IT 기업 내에서도 기획·운영은 문과, 개발은 이과라는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학과 담을 쌓고 지내던 문과 전공 직원들이 회사 업무에 애를 먹고 있다"며 "수학적 데이터와 통계 분석은 문이과를 막론하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족식엔 수학자인 박형주 아주대 총장을 비롯한 27명 자문단이 참석했다. 학계에선 박 총장을 포함해 김찬종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이상구 성균관대 자연과학대 학장, 이창옥 KAIST 수학과 교수 등 11명이 참여했다. 연구기관에선 조성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윤강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산업수학전략연구부장 등 5명이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계에선 유 전무가 유일하게 위촉됐다. 일선 학교 교사와 교원단체 직원 등도 참여했다.


박 총장은 "현재 대학 이공계 수업은 문이과 구분을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에 문이과 통합과정(2015 교육과정) 학생들이 들어오는 내년부터 상당한 혼선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2015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을 없앴을 뿐 아니라 수학 교육과정에서 이공계 대학 수업의 기본인 선형대수(행렬 벡터)를 뺐다. 각계에서 "기술의 발상지인 이공계 대학 수업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많았다.

수학 뿐 아니라 과학 교육도 빠르게 부실해지고 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53만여명 중 물리2, 화학2 응시 학생은 6000여명에 불과했다. 또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10년 후엔 이공계 대학 석·박사 배출 규모가 현재의 60% 선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정진수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 20여년간 수학과 과학 교육 과정은 축소 일변도였다"며 "교육 과정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입시인데, 곧 입시에서 과학이 사라질 판"이라고 교육당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교수는 "지난 수십년 간 수학 교육과정을 지켜본 결과 개정될 때마다 '이것도 줄여라, 저것도 줄여라'라는 요구밖에 없었다"며 "이런 수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배출되니 네이버같은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렬 벡터도 고교에서 못 가르치게 교사들 손을 묶어놓고 AI 인재를 육성하라니(기가 막힌다)"고도 했다.

박 총장 역시 정 교수의 견해에 "십분 동의한다"고 했다. 박 총장은 "국가간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거대한 트렌드에 걸맞게 수학 과학 교육이 변해야 할 때"라며 "교육과정 개편은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손잡고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인 만큼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김종표 수리고(경기 군포) 교장은 "우리가 수학 과학 교육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10년, 20년 뒤 삶이 바뀌고 국가 경쟁력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아이들의 진로를 우선으로 양 부처가 협업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문단은 내년 6월까지 활동하며 수학 과학 교육 방향 개선에 대한 의견을 양 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협의체는 새로운 수학, 과학 교육 생태계 조성을 위해 두 부처가 협력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첨단 과학 기술을 활용해 온 오프라인 교육을 연계하고, 과학기술계 현장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수학 과학 교육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KAIST UNIST 등 4대 과기원, 산하 40여개 공공연구소 등과 일선 학교를 연계해 수학 및 과학 교육과정을 설계 운영하는 '스타브릿지(STAR:School Teacher And Research institute Bridge) 센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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