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집유죄' 유감

입력 2020-07-31 17:45   수정 2020-08-01 03:08

“부모님은 미안하다고 하셨다. 18년 보유하고 있던 서울 잠실 아파트를 팔기로 하셨단다. 보유세 폭탄을 이겨낼 수 없어서다. 부모님은 잠실 2주택자다. 30년 전 잠실주공5단지를 사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2002년 매수한 잠실주공1단지(잠실엘스)를 이번에 처분하기로 하셨다. 18년 전 4억5000만원에 샀으니 20억원에 팔더라도 양도세(대략 8억~9억원) 내고 나면 그리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도 아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고 투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부모님은 젊은 날 하고 싶은 거 참고 근검절약하셨는데 그 대가가 투기꾼 딱지에 징벌적 세금이라니 정말 화가 난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10년 이상 보유는 투기가 아니다’라는 A씨 사연이다. 2주택자부터는 ‘집 가진 죄인’ 신세다. 공무원이라면 인사상 불이익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시대다.

고강도 부동산대책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집값 안정이 명분이다. 무주택 서민의 반대편엔 자연스레 투기꾼 딱지가 붙은 집 가진 죄인들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 프레임이다. 집 가진 죄인들이 쏟아내는 하소연을 더 들어보자.

“도지사와 시장이 전·월세 가격을 정한단다. 보유세가 연 1000만원인데 월세는 50만원(연 600만원)이라면 400만원 자선사업을 하란 얘긴가. 정부가 ‘1주택~ 1주택~ 신나는 노래~’를 계속 부르는데 모두 1주택자가 되면 전·월세는 누가 공급하나. 집 가진 악덕지주 적폐세력이라고? 나도 한때 세입자였다. 반지하 옥탑방 살았고 집주인에게 보일러 수리비도 못 받았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고 눈물 나게 아껴서 재산 모은 죄로 매일 범죄자 취급받는다.”

집 가진 죄인들은 평생의 노력이 통째로 비난받는다고 억울해한다. 아껴서 저축하고 집 산 것밖에 없는데, 자고 나니 투기꾼이 됐다는 하소연이다. 집으로 투기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해서 재산을 모은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옳지 않다.

이제 집 가진 죄인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A씨 부모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1주택자로 전향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전향자들에게 “앞으로는 집 사지 말고 주식 사라”고 권하는 것 같다. 그런 권유를 따라 1주택 주식 투자자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얼마간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아끼고 모아서 집 사고 세 주는 단순한 재산 형성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복잡한 금융용어를 이해하고 급등락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금융투자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다른 하나의 선택지는 ‘존버’(오래 참고 끝까지 버팀)다. ‘내가 잘못한 게 뭐냐.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오기를 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장에서 6000원짜리 통닭 사 먹으며 돈 모아서 집 샀는데, 세입자 집 앞에 쌓여 있는 브랜드 치킨 상자 보고 ‘현타’(현실 자각 타임)왔다” “정부가 나를 악덕 집주인으로 만들고 있다. 전·월세 가격 규제하면 임대차계약서에 온갖 특약 100개, 1000개 달아놓고 세입자도 면접 봐서 뽑겠다” 등의 결기가 가득 찬 사연이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전향보다 존버를 선택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다.

과거 한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이 돈만 있으면 저지른 죄도 없앨 수 있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 가진 게 죄라는 유집유죄(有집有罪)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지 궁금하다. ‘무주택 서민 vs 집 가진 죄인’ 프레임이 더 공고해져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와 집단 갈등이 심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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