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한국의 '수소경제' 전략,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20-07-31 09:30   수정 2020-07-31 18:48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그린 뉴딜'을 주제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적용된 차세대 전기차를 내년 출시할 예정"이라며 "내년이 현대차그룹에 전기차 도약을 위한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Fuel Cell)로 움직이는 수소전기차(넥쏘)를 작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5000대를 판매했으며, 수소전기트럭도 세계 최초로 양산해 이달 초 스위스로 처음 수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시스템을 지난 20년간 개발해왔다며 선박이나 열차, 빌딩, 발전소 등 여러 영역, 심지어 군사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연료전지시스템과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활용한 공중 이동수단인 도심형 항공기(UAM)를 2028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에너지원 수소를 이용하는 '수소경제'의 미래를 일반인 눈높이에서 설명해준 자리였다.
◆왜 '수소'에 주목하나
'수소경제'는 수소전기차 넥쏘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수소충전소를 떠올리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물론 수소산업과 수소경제의 영역은 이보다 훨씬 넓다. 그동안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전혀 새로운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수소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수소경제의 가능성은 어마어마하다. 글로벌기업 33곳이 참여하는 수소위원회는 2050년 수소경제가 2조5000억달러(약 3000조원) 규모의 세계 시장을 형성하고, 30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고갈 문제의 해결을 넘어 누가 수소사회의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글로벌 질서와 판도가 재편될 수도 있다.

수소는 오염물질 배출이 없는 대표적 청정에너지다. 연소과정 없이, 산소와 결합하는 화학반응에서 에너지(전기+열)와 물만 나오기 때문이다. 수소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면 온실가스가 아니라 물이 발생하고, 공기 중 산소를 쓰다보니 필터를 통해 초미세먼지까지 걸러낸다. 2005년 교토의정서 공식 발효 이후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하는 세계 각국 입장에서 최적의 에너지원이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생산엔 문제가 없지만, 이동과정에서 한계를 보인다. 기존 송전용량을 넘어서는 에너지가 만들어지면 초과분을 중간에 내버려야 한다. 수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잉여에너지를 나중에 쓸 수 있도록 수소로 변환해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수소는 무한하다는 장점도 있다. 바닷물의 10.8%가 수소로 이뤄져 있을 정도다. 같은 무게라면 화석연료보다 3배 가까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이 높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한국처럼 외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 그렇다.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가동률이 크게 떨어져 비싼 화력발전과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졌다. 당연히 전기료가 급등하는 문제가 따랐다. 이때문에 수소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적어도 '포스트 원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후끈 달아오른 글로벌 경쟁
단점이 없지는 않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기체여서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다. 같은 질량일 때는 화석연료보다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키지만, 같은 질량으로 모으기 위해 상당한 공간(부피)이 필요하다. 생산과 이동, 즉 사용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래서 비용 측면에서 수소에너지가 석유, 천연가스보다 아직은 불리하다. 다만 기술발전과 향후 규모의 경제 달성으로 수소의 가격은 현저하게 낮아질 수 있다. 운송하는 수소의 부피 문제는 액화수소기술 개발로 해결되고 있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수소를 액화해 본국으로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수소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걸림돌을 하나 둘 치우는 과정에서 글로벌 경쟁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유럽연합(EU)는 지난 8일 '유럽 수소전략'을 발표했다. 역내 수소경제 규모를 올해 20억유로에서 2030년까지 1400억유로(약 200조원)로 키우고, 일자리도 14만개 창출한다는 목표다. 수소에너지 관련 투자가 2050년까지 최대 4700억유로(약 660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역내 각국과 에너지·자동차·운송·화학 등 분야 기업 200개 이상이 참여하는 민관 '수소연합'도 만든다. 그 중 독일은 지난달 국가 수소경제전략을 마련, 약 90억유로(약 12조6000억원)를 들여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수소를 운송·철강·화학 등 산업의 에너지원으로 쓰겠다고 했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직접 수소경제를 챙긴다. 2017년 세운 수소기본전략을 통해 에너지자급률을 동일본 대지진 이전보다 높은 수준인 25%로 높일 계획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3년과 비교해 2030년 26%, 2050년 80%까지 줄인다는 목표다. 미국은 2003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2030년을 목표로 한 수소경제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때까지 수소에너지 시장 규모를 연 1400억달러(약 167조원)로 키워 일자리 70만개를 확보할 계획이다.

◆'원년' 맞은 한국 수소경제
지난해와 올해는 우리니라 수소경제에 중요한 이정표들이 많이 세워졌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세계 1위 수소경제 국가' 비전을 담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수립했고, 올 2월에는 일명 '수소경제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세계 최초로 제정했다. 지난 1일에는 정세균 총리가 주재하는 수소경제 컨트롤타워인 제1차 수소경제위원회가 출범,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는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85만대를 보급하고 수소충전소 660개를 만들기로 했다. 2040년 수소 전문기업 1000개를 육성하기 위해 수소모빌리티·연료전지·액화수소·수소충전소·수전해 등 5대 분야에서 수소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또 전국을 4대 권역으로 나눠 중규모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2025년까지 소규모 생산기지 40곳을 마련키로 했다. 제주도 풍력, 새만금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다양한 '그린수소'(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 수소) 사업도 추진한다. 울산, 안산, 전주·완주, 삼척 등에 추가해 3기 신도시 5곳 중 2곳을 수소도시로 조성한다. 여기에는 공동주택 연료전지 발전, 수소충전소 및 수소버스를 공급하게 된다.
◆현대차·효성의 수소경제 도전
국내 업계의 수소 개발사도 만만찮다. 현대차는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1998년부터 연료전지 개발에 들어가 2005년 연료전지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5년엔 1새대 수소전기버스 개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시범운영 성과를 낳기도 했다. 드디어 2013년 세계 완성차업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양산 모델 '투싼ix'을 내놓았다. 도요타의 '미라이'보다 1년 이상 앞선 개발이었다. 2018년 미국 CE쇼에서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의 차명과 주요 기술을 공개했다. 5분 이내 충전, 주행거리 609㎞로 세계 양산 수소차 중 한번 충전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차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투자해 수소전기차를 연간 50만대까지 생산하고, 수소 연료전지시스템도 70만기까지 생산을 추진할 계획이다.

수소전기차와 일반 전기차는 함께 발전해갈 수 있는 기술이다. 출퇴근용 단기리 주행은 전기차, 장기리 주행이나 대중교통은 수소차가 유망하다. 일반 승용차의 경우 주행거리 300~700㎞까지는 전기차 배터리가 연료전지보다 저렴하지만, 이 구간을 넘어서면 연료전지가 더 경쟁력이 있다. 짧은 충전시간, 긴 주행시간은 수소전기차만의 경쟁력이다. 또 디젤연료가 활용되는 버스 트럭 대형화물차 대륙간해상운송 등 장거리 대규모 운송을 해낼 친환경연료는 수소 뿐이다. KPMG에 따르면 2040년 전 세계 자동차 4대 중 1대가 수소차(3500만대), 비슷한 비율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수소전기차의 부품 경쟁력도 뛰어나다. 현대모비스가 생산하는 연료전지 스택(전기발생장치), 수소공급·저장장치 등 핵심부품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아우디에도 관련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수소전기차 관련 특허의 경우 도요타가 360건, 현대차그룹이 232건을 보유하고 있다. 연료전지시스템과 구동계는 물론, 수소저장 시스템, 수소 생산 및 제어기술 등 다양한 분야 연구도 진행해왔다.

최근 좋은 소식이 하나 더해졌다.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효성첨단소재가 '넥쏘'에 수소 연료탱크용 탄소섬유를 납품하기 위해 막판 인증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수소 연료탱크는 평균 기압의 최고 900배를 버티면서도 가벼운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그 소재로 탄소섬유가 제격이다. 지금껏 넥쏘에 들어가는 탄소섬유는 일본 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가 납품해왔다. 그런 점에서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수소부품산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셈이다. 효성은 그룹 차원에서도 수소 가치사슬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 4월 독일 산업가스 기업 린데와 1만3000t 규모의 액화수소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또 2040년까지 1200개의 수소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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