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이 회사의 위상을 확 바꿔놨다. 증권가에선 올 상반기에만 매출 3384억원, 영업이익 1960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전체 매출 1220억원, 영업이익 224억원을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놀라운 성장세에 씨젠의 시가총액(7월 31일 종가 기준)은 6조8313억원으로 올 들어서만 8배 커졌다.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이어 코스닥시장 시총 2위인 대장주가 됐다.
K진단키트의 성공에는 중국산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한국보다 더 빨리 만들고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외면당했다. 분자진단시약이 돈 되는 비즈니스가 아니었던 것도 역설적으론 우리에겐 기회였다. 평소 실험실 등에서 필요할 때 만들어 쓰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미국 유럽 등에선 대규모 생산이 어려웠다. 그나마 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곳이 씨젠 등 국내 기업들이었다. 기존 진단시약의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생산시설을 갖춰둔 것이 운 좋게 대박을 가져다준 것이다.
K진단키트는 한국 수출 지도까지 바꾸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보건산업 수출액은 17억5700만달러였다. 이 가운데 진단제품 수출이 7억3000만달러였다. 수출 비중이 40%를 웃돈다. K진단키트 덕분에 보건산업이 국내 대표 수출 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기존 수출 주력 산업이던 석유제품(16억달러), 선박(14억달러), 디스플레이(13억달러)를 앞질렀다.
하지만 K진단키트의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치료제나 백신 등과 달리 기술장벽이 높지 않아서다. 국내에서만 진단키트 허가를 받은 업체가 70곳이 넘을 정도다. 로슈 지멘스 등 글로벌기업들이 이 시장에 본격 뛰어든 것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한때 부르는 게 값이었던 진단키트 제품 가격도 급락세다. 3, 4월까지 개당 30달러에 달했던 제품가는 최근 2~3달러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국내 업체들끼리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거래처를 가로채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는 셈이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국내 진단산업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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