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설치 속 '다중 자아'…"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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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8-02 17:37   수정 2020-08-03 16:58

그림·사진·설치 속 '다중 자아'…"나는 누구인가"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 가지런한 윗니가 드러나는 웃음, 오뚝한 코와 선한 눈매까지…. 쌍둥이처럼 닮은 두 여인은 실상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캐나다 사진작가 프랑수아 브뤼넬은 1999년부터 이처럼 국적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꼭 닮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에게 비슷한 복장을 입혀 흑백사진을 찍는 ‘I’m not a look-alike!’ 프로젝트를 해왔다.

모델로 참여한 ‘도플갱어’ 커플은 250여 쌍.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16쌍(32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도플갱어 같다. 브뤼넬은 이들의 사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은 단지 외형만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진정한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사비나미술관의 ‘나 자신의 노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자아의 통합적 정체성에 접근하는 여름특별전이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걸작 시집 《풀잎》에 실린 52편의 연작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에서 가져왔다.

이번 전시에는 타인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 안에 담긴 ‘멀티 페르소나(다중 자아)’를 살펴보는 작품 123점을 전시 중이다. 고상우 배찬효 원성원과 브뤼넬의 사진, 박은하 이샛별 지요상의 회화, 김나리 김시하의 입체·설치, 김현주 이이남 조세민 한승구의 영상·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시선을 끈다.

김나리는 흙으로 형상을 빚고 자연건조한 뒤 속을 파내 가마에서 소성한 도자 조각 40여 점을 선보였다. 부처의 두상, 눈물을 흘리는 여인 등 각각이 하나의 작품이자 전체가 설치작품이다. 여인의 눈물이 칼날처럼 흐르기도 하고, 그 눈물에서 풀과 나무가 솟아나기도 하는 등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판타지가 전시장에 펼쳐져 있다. 상체를 드러낸 여성의 머리 위에 앉아 날개를 펼친 수리부엉이는 인간 이외의 존재와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명 존중의 철학과 윤리적 각성을 촉구한다.

고상우는 자연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사슴의 얼굴을 그린 ‘Black Pearl’ 연작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생물체를 통해 ‘나’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영국에서 살고 있는 배찬효는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비롯한 서양 군주의 초상화 주인공으로 자기 자신을 등장시켰다. ‘문화적 타자’를 주체로 역전시킴으로써 편견과 차별의 역사를 성찰하고 새로운 관계 정립을 시도한다. 거울의 반사효과와 사회적 인격인 가면을 결합한 한승구의 영상설치 작품 ‘미러 마스크(Mirror Mask)’는 개인이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하는 자아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자기 얼굴을 비춰보면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지요상의 ‘적요(寂寥)-물 위의 무위(無爲)’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화선지에 수묵으로 그린 작품이다. 현실의 속도와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모습에서 짙은 공감대가 형성된다. 특히 물에 비친 얼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는 행동은 “너, 나 맞아?” 하고 물어보는 듯하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 반영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김현주는 디지털 기술 발달과 함께 사이보그화된 인간의 몸과 능력이 자아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침묵 속에 눈을 깜빡이며 떨고 있는 사이보그 자아를 담은 ‘Dmorph’, 정보와 데이터로 이뤄진 입자의 이미지로 분산된 자아의 정체성을 표현한 ‘I, dispersed’ 등의 영상작품을 통해 뉴미디어 시대의 디지털 자아와 그 멀티페르소나적 특성을 강조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자아가 실현되는 과정을 다룬 조세민의 가상현실(VR) 작품 ‘하지만 희붐한 춤사위’, 여러 자아가 가족처럼 한 몸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내면 풍경을 통찰한 이샛별의 회화 ‘소거’ 등도 같은 맥락의 작품들이다.

전시 주제가 다소 무겁고 철학적이지만 난해하지는 않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비대면(언택트) 시대를 견디게 하는 힘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가운데 상호 연결과 공존의 지혜를 찾는 것이다. 휘트먼이 “나는 크다. 나는 다양함을 담아낸다”고 한 것처럼 모든 자아는 소통과 공존을 통해 더 단단하고 강해진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고 대립, 경쟁, 모순되는 요소들이 자아 속에 융합됐을 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번 전시에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9월 19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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