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관 시험엔 '임대료 규제하면 부작용 생긴다'고 해놓고...

입력 2020-08-03 14:38   수정 2020-08-03 14:53


요즘 뜨거운 이슈인 부동산과 관련해 간단한 5지선다 문제 하나를 내 보겠습니다. 기초적인 경제학 지식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시험에 출제했던 기출문제입니다.

Q. 다음 중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하면 발생하는 현상이 아닌 것은?

① 임대 주택들의 질이 올라간다.
② 공급되는 임대 주택의 양보다 수요가 많아져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③ 세입자들의 주거 이동이 줄어든다.
④ 건물주 등이 임대 주택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⑤ 기존의 임대 주택이 상업용부동산 등 다른 용도로 바뀐다.

정답은 ①, '임대 주택들의 질이 올라간다' 입니다. 해설에는 "보기와는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하면 임대 주택의 질이 떨어진다"고 돼 있습니다. 경제학적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너무 싱거운 문제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편향된 엉터리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산업인력공단이 출제하는 '제 7회 공인중개사 시험'(1993년) 기출문제를 좀 더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는 거의 매년 반복해 출제됩니다. 해당 내용이 '부동산학개론'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고, 더 나아가서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기 때문입니다. <맨큐의 경제학>을 비롯해 대부분의 경제학 원론서의 앞부분에는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예로 주택 임대료 규제가 언급돼 있습니다.
임대료 규제=악법, 경제학계 '상식'
“어디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나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농담입니다. 그는 경제학자들에게 정책 효과에 대해서 물으면 매번 “일정한 효과는 있겠지만,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런 부작용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on the other hand)’는 저런 부작용도 예상된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게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이 일화는 보통 경제정책을 입안할 때 부작용을 잘 검토해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거론됩니다. 좋기만 한 정책은 없으니 미리 검토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책무라는 겁니다.

그런데 경제학자 대다수가 '나쁘다'고 말하는 정책이 있습니다. 바로 임대료 상한제입니다. 1990년 미국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주택 임대료규제는 주택의 수량과 품질을 저하를 가져온다"고 동의한 경제학자는 93%에 달했습니다. 2001년 한국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조사에서도 동의율이 87%로 매우 높았습니다. 지금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웨덴 경제학 석학 아사르 린드벡의 "임대료 규제는 전쟁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말이 학계에서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실증 분석 및 사례에서는 임대료 규제가 도시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지난해 9월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내놓은 연구결과가 대표적입니다. 1994년 월세 상한제가 도입된 이후 샌프란시스코 내 다세대주택 공급은 15% 줄었고,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에 거주하는 인구수는 25% 감소했습니다. 집주인들이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을 허물고 콘도미니엄(아파트) 등 고급 주택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세입자 일부가 혜택을 봤지만 저렴한 월세방이 줄고 새로 입주해오는 신혼부부 등이 높은 월세 부담을 뒤집어쓰면서 전체적인 주거 환경이 악화되는 현상도 관측됐습니다.


문화의 중심지가 최악의 우범지역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대낮에도 노숙자들이 널부러져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텐더로인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은 원래 최고급 호텔과 유명 클럽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이 즐겨 공연하는 곳으로도 유명했지요. 하지만 임대료 규제가 도입되자 건물주들은 비싼 유지비를 임대료로 감당할 수 없게 돼 건물을 방치했습니다. 새로 주택을 짓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지역은 쇠락해 갔고, 결국 이 지역은 각종 여행 서적에서 “대낮에도 방문을 권하지 않으며, 특히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꺼내면 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곳이 됐습니다.
'오답' 찍은 국토부가 아쉬운 이유
이번 임대차 3법 도입으로 인해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국토부는 자신들이 주관하는 시험은 물론 경제학의 기초 상식에도 어긋나는 법을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하는 게 한국만은 아니라는 점을 들며 임대료 상한제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그렇게 잘못됐다면 선진국들은 왜 도입하겠느냐"는 논리지요.

정치경제학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임대료 규제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이미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사람으로, 비교적 분명합니다. 확실히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거지요. 반면 규제의 부작용은 서서히 나타나고, 현 정권보다는 다음 정권에서 피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광범위한 계층이 피해를 입지만 피해자들이 명확히 특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임차인이 상대적 약자, 임대인이 강자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정책'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일단 임대료 규제가 도입되면 이를 철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규제론자들은 언제나 규제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 "규제가 약해서" "규제가 덜 정교해서" 등의 설명을 내놓습니다. 규제를 풀자고 하면 "규제가 있는 지금도 이렇게 임대료가 높은데, 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맞서지요. 임대료 규제를 일부분 철폐한 미국 영국 일본 등도 이런 주장에 가로막혀 있다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부작용이 확실해졌을 때에야 규제를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의 통과를 막지 못한 국토부 공무원들의 소신 부족이 더욱 아쉽습니다. 사실 전월세 상한제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기에 한나라당도 발의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법은 번번이 경제 관료와 학계, 전문가들의 반발에 가로막혀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국회 과반을 가볍게 넘어서는 거여(巨與)의 힘으로 번갯불처럼 법안이 통과돼 시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 고위 관계자 누구라도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다는 이야기 한 번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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