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 NHN 대표 "시장을 가장 잘 아는 건 현장의 직원들이다"

입력 2020-08-04 17:22   수정 2020-08-05 01:08


NHN의 사내 인트라넷에는 정우진 대표의 업무 일정이 모두 공개된다. 직원들은 정 대표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비어 있는 시간엔 언제든 면담을 신청할 수 있다. 막 입사한 직원부터 임원까지 누구나 가능하다. 심지어 당일 약속을 잡아 대표실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정 대표가 직원들과의 만남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다. 사업 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생생한 아이디어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다.
장기 계획보단 발 빠른 대응
정 대표는 지금의 NHN이 NHN엔터테인먼트로 불리던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아왔다. NHN엔터테인먼트는 2001년 포털서비스업체 네이버컴과 게임회사 한게임 등의 합병으로 설립된 NHN(현 네이버)이 모태다. 2013년 게임 부문만 독립해 나온 회사가 NHN엔터테인먼트다.

정 대표가 대표를 맡은 건 NHN엔터테인먼트가 독립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당시 한 컨설팅 회사에서 NHN의 향후 10년 ‘마스터플랜’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그 계획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보기술(IT) 업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5년, 10년 단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시장과 동떨어진 곳에 조직을 가두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시대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아이디어들로 승부를 봤다.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의 움직임을 가장 예민하게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과 자주 만나는 것은 물론 직원 개개인이 하고 있는 작업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도록 사내 업무 공유 시스템도 개선했다. 중간 관리자를 거쳐 보고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왜곡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 대표의 이런 경영 철학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2000년 서치솔루션이란 회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서치솔루션이 네이버컴 등과 합병해 NHN으로 출범하면서 그 역시 NHN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직위는 대리였다. 이후 NHN 미국지사의 사업개발그룹장(2005년), NHN 플레이넷사업부장(2008년) 등을 맡으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정 대표는 “말단 직원 때부터 꾸준히 현장에서 일해왔다”며 “현장에 있는 개발자와 직원들만이 시장을 예민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NHN은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대표를 맡기 직전 NHN 매출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했다. 정 대표는 취임 후 전자상거래, 음원 유통, 웹툰, 클라우드 등의 분야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게임 사업의 매출 비중은 27%(2020년 1분기 기준)로 떨어졌다. 게임사업에서도 20%에 불과했던 모바일 게임 비중을 66%까지 끌어올렸다.
날개가 된 사회학 전공
정 대표는 대학에서 IT와 관련없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가 IT 업계에 발을 들인 건 인터넷 검색 시장이 생긴 1990년대 말이었다. 관련 기술은 없었지만 해당 산업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검색어와 웹페이지를 연결해주는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이 알고리즘의 바탕이 되는 사회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관리자로 승진하면서 IT 비전공자인 정 대표의 경력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IT기업 관리자의 업무 대부분은 개발자와 사업 부문 직원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완성도에 중점을 두는 개발자들의 요구사항과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제품이 잘 팔릴지 고민하는 사업부 직원들의 생각은 부딪치기 십상이다. 정 대표는 개발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개발자들의 언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양쪽의 간극을 메우는 일종의 통역가였다”고 설명했다.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벌어졌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게임사업부에선 바둑 AI를 만들어 게임으로 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개발자들은 바둑 게임 개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른 인터넷 서비스의 AI 기술과 큰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정 대표는 외부에 NHN의 기술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바둑 AI가 필요하다고 개발자들을 설득했다. 개발자들이 움직이는 지점을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었다. 결국 게임사업부 직원과 기술 개발 직원들은 협업해 2018년 ‘토종 알파고’라 불리는 바둑 AI ‘한돌’을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이세돌 9단이 한돌과 은퇴 대국을 벌이기도 했다.
NHN만의 플랫폼 구축
정 대표의 과제는 NHN만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네이버는 포털, 카카오는 메신저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듯이 NHN도 확실한 플랫폼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가 강력한 플랫폼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네이버로부터 독립한 직후였다. 네이버 시절에는 포털 서비스 네이버를 기반으로 신규 서비스 이용자를 어렵지 않게 모았다. 독립 후에는 달랐다. 출시하는 게임마다 대규모 마케팅 비용이 발생했다. 마케팅을 소홀히 하면 이용자가 바로 줄었다. 정 대표는 “독립한 이후에도 네이버 ‘물’이 덜 빠졌는지 이용자 확보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고 털어놨다.

정 대표는 업의 본질부터 다시 생각했다. NHN 사업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핵심 플랫폼으로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아이템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간편결제 서비스였다. 정 대표는 “게임, 음원 유통 등 NHN의 주요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일상생활 시간을 점유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관련 소비 활동에 결제는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2015년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코는 온·오프라인 소비에서 관문 역할을 한다. 정 대표는 결제 서비스에 다양한 IT 서비스를 얹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코 이용자 확보는 쉽지 않았다. 연간 수백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투입했지만 ‘충성 고객’은 늘지 않았다. 페이코 출시 첫해에는 영업비용이 급증해 54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 대표는 페이코 실사용자를 늘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페이코로 결제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수를 늘렸다. 간편결제 시장의 경쟁자인 삼성전자와도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삼성페이와 제휴해 국내 간편결제 서비스 중 가장 넓은 오프라인 결제망을 확보했다. AI를 활용해 이용자 소비 행태 분석도 강화했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페이코의 실사용자수(MAU)는 지난 5월 400만 명을 넘어섰다. 실적도 개선돼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 매출(1조4886억원)과 영업이익(867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정 대표는 ‘NHN만의 플랫폼’이라는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음원, 게임, 웹툰, 클라우드 등 이용자들의 다양한 생활 영역에 파고들기 위해선 더 많은 페이코 이용자가 필요하다”며 “NHN만의 멋진 IT 생태계가 완성될 때까지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우진 NHN 대표

△1975년 독일 쾰른 출생
△1994년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2000년 서치솔루션 입사
△2001년 NHN 입사
△2005년 NHN USA 사업개발그룹장
△2008년 NHN 플레이넷사업부장 겸 캐주얼게임사업부장
△2013년 NHN엔터테인먼트 사업센터장
△2014년 NHN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사장


구민기/김주완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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