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영권 뒤흔들 상법개정안의 진짜 문제

입력 2020-08-05 17:31   수정 2020-08-06 00:07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가 있다.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의 선택’ 문제다. 여기서 ‘선택’이란,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때 비상장회사에 적용되는 일반규정(발행주식총수의 1~3% 지분 보유 요건) 또는 상장회사에 적용되는 특례규정(0.01~1.5%로 지분율을 낮추되 6개월 이상 보유 요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고 기업 실무의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주주권의 하나인 이사·감사해임청구권을 예로 들어 보자. 이 권리를 행사하려면 비상장회사의 주주는 발행주식총수의 3%를 가져야 한다(일반규정). 상장회사는 소액주주가 3%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0.25%만 가지면 되는 대신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특례규정). 법무부는 일반규정이든 특례규정이든 소수주주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개정하려 하는데, 상장회사의 경우에도 비상장회사처럼 주주가 3%를 보유한다면 (6개월 이상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바로 이사해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6개월 보유 기간 제한이 없으면 오늘 증권시장에서 3%를 매입해 3일 후 명의가 넘어오면 바로 이사·감사해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개정은 매우 위험하다. 코스닥 상장사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도 펀드들의 타깃이 되기 쉽다. 2015년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식 11.61%를 취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 소집통지금지,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엘리엇의 주식 보유기간이 6개월에 미달한다는 이유였다. 작년 주총 때는 KCGI 등 3자연합이 한진칼의 의안상정 가처분신청을 했다. 서울고법도 6개월 이상을 보유하지 않은 3자연합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제 상법 개정안대로 ‘6개월 보유 규정’이 무력화된다면 대형펀드는 물론 소위 ‘이리떼 펀드연합’이 3일 전에 주식을 대량 취득해 바로 상장사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은 2004년 판결에서 일반규정이든, 상장사 특례규정이든 한쪽 요건만 갖춰도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판결은 상법 제542조의2 제2항을 위반한 오류 판결이다. 제2항에는 ‘이 절(제13절 상장회사에 대한 특례)은 이 장(제4장 주식회사) 다른 절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렇게 명문에 반하는 해석을 한 이유는 법률의 문맥상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고 또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소액주주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소액주주가 보호될 것인가? 소액주주라도 0.25%를 보유하려면 적어도 몇억원은 가져야 하므로 쉽지 않다. 반면 펀드들은 수백억원도 동원할 수 있다. 결국은 소액주주가 아니라 펀드 보호가 된다. 대법원 판결이 2004년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개 주주총회 개최금지 등 가처분 신청이어서 신속히 결정돼야만 하고, 따라서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다만 하급심 판결·결정 수십 건은 엘리엇 사건, 3자연합 사건에서처럼 대법원 판결에 반기를 들었다. 상장회사의 경우는 6개월 보유를 정한 특례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이처럼 유사 사건이 단기간에 다수 쌓였는데, 이것은 이런 분쟁이 많다는 뜻이고, 이 규정을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 회사법을 보면 명확해진다. 일본은 상장회사의 경우 지주요건을 완화하지 않고서도 6개월 보유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최근 ‘엘리엇 방지법’까지 제정한 일본, 대량보유신고를 강화한 프랑스를 본받지는 못할망정, 정부가 나서서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것은 생색뿐이고 펀드나 보호하자는 것이 아닌가. 경영권 방어수단 하나 없는 한국 기업이 기댈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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