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금융시장 양극화' 심화시키는 저금리

입력 2020-08-06 17:34   수정 2020-08-07 00:06

요즘은 은행에 예금해도 이자를 별로 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돈을 꿀 때는 보통 그에 대한 대가로 이자를 얹어서 돌려주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은행이 사람들의 예금을 받는 것은 돈을 꾸는 것과 같은데도 거의 이자를 주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또 이런 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생길까.

금융시장의 이자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각 나라의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가 있다. 기준금리는 이자율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시장에서 결정되는 이자율이 반드시 기준금리와 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근처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런데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와 그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거의 0%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고, 대부분 선진국 중앙은행은 모두 비슷한 통화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상당히 개방돼 있어 어느 정도 이들의 저금리 정책을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들 나라가 저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은 경기 부양이라는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금리는 자본의 비용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고용하면 임금을 줘야 하고, 이는 노동 비용이 된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자본을 빌리면 그 사용료로 이자를 줘야 하는데 그 자본 비용이 금리다. 저금리 정책은 마치 정부가 노동에 대한 최저임금 수준을 낮게 유지하는 것과 같이 자본 비용을 낮게 유지하는 것인데 이는 기업들이 자본을 사용하는 비용을 낮춰서 투자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경기가 얼어붙어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데 누가 이자가 싸다고 돈을 빌려서 안 팔리는 물건을 생산하는 데 투자하겠는가? 대신 재화 생산과는 무관하지만 돈이 몰려들어 가격 상승이 기대되는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는 싼 이자를 활용하는 투기가 성행한다. 이들 투기시장의 흥미로운 점은 부동산의 사용가치나 기업 성과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몰려들면 실제 가격이 상승하고 따라서 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에 대해서는 그 수준이 너무 낮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본에 대한 비용은 0 근처에 묶어둬도 될까? 혹자는 돈이 많은 자본가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문제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사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금융전문가를 고용해 싼 금리 말고 비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저금리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돈과 금융 지식이 많지 않은데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많지 않은 돈으로 노후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막연한 지경이다.

저금리 기조는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정책의 성격이 큰데 이제는 금융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있고 금융시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제 은행에서 예금 이자로 돈을 벌지 않고 더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 시장에서 돈을 번다.

반면에 자본이 적고 금융시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은행을 통해 적게나마 안정적인 이자를 받아 생활에 보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위험하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해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날리거나 금융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 저금리는 모든 사람을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가진 돈이 많다면 투자 다변화를 통해 위험 분산을 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도 저도 아니면 가진 돈을 까먹어 가며 살아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금융시장 개방도로 인해 기준금리를 당장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제 경기회복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재고해볼 때다. 최근에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낮춰서 경기가 현격히 회복된 적이 있는지 돌아보자. 시장에서 수요가 생기기 전까지는 자본비용만을 낮춰서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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