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불확실성 연속 남극 연구…동료들 믿고 함께 견뎠죠"

입력 2020-08-06 17:43   수정 2020-08-07 02:31

“해양과학기술원에서 처음엔 극지가 아니라 바닷속 해령을 연구했어요. 주로 저위도 지역을 많이 연구하는데 중앙해령의 3분의 1이 남극을 둘러싸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25년 전 호기심으로 시작된 제 남극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바닷속 지구가 간직한 비밀을 독자들에게 쉽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박숭현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사진)은 최근 출간한 《남극이 부른다》를 쓴 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책은 암석학에서 지질해양학으로, 고해양학에서 중앙 해령 연구로, 마치 바다의 조류가 흘러가듯 이동한 박 연구원의 25년 해양 지질 연구 궤적을 돌아본다.

그는 “익숙한 사람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 불확실성이 많아 남극 연구는 항상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계획을 세워 수일에 걸쳐 남극을 찾아가도 연구 당일 기상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곳,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곳이 바로 남극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남극에서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주어진 한계 시간 동안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선 즉각적인 판단과 고민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로 지구 내부 물질과 에너지가 나오는 통로인 해저 중앙 해령을 연구해 왔다. 책은 25년간 겪은 고난 속에서 이뤄진 해령 연구 및 탐사 과정과 더불어 그 끝에서 박 연구원이 이룬 성과를 상세히 기술한다. 박 연구원은 남극권 중앙 해령 최초의 열수(熱水) 분출구를 비롯해 열수 생태계를 구성하는 신종 열수 생물, 빙하기-간빙기 순환 증거 등을 발견했다. 지난해 ‘질란디아- 남극 맨틀’로 명명된 새로운 유형의 맨틀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지구 내부 맨틀의 순환과 진화 문제를 한국의 한 과학자가 풀어낸 것이다. 이는 30년 동안 고착된 전 세계 맨틀 연구를 뒤엎는 결과물이었다.

그의 25년 연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열수 분출구 발견’ 당시를 꼽았다. “첫 탐사를 나가려는데 지진을 만났어요. 탐사가 취소될 뻔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출항했죠. 시료를 채취해야 했지만 열악한 기상 상황에 계속 실패하던 중 딱 한순간에 채취한 시료에서 열수 분출구 신호를 잡았죠. 아직도 생생합니다.”

책 두 번째 장 제목은 ‘40일간의 세계일주’다. 박 연구원과 팀원들은 열수 분출구 지도를 그려내고자 록코어를 투하·회수하는 7일간의 연구를 계획했다. 이를 위해선 스페인, 아르헨티나, 드레이크 해협, 남극 세종기지, 뉴질랜드 등을 거치는 33일간의 숨가쁜 여정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7일 중 실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은 4일이었고 그나마도 악천후 탓에 제대로 주어진 날은 하루에 불과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정신승리라고 봐야죠. 처음 목적을 잊지 않고 최대한 거기에 가까이 가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한다면 그 길은 반드시 열릴 거라고 믿고 동료들과 함께 견뎌냈어요. 제 연구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습니다.”

박 연구원은 “과학이 지닌 인간적인 면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이 현실을 차갑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이 역시 인간이 하는 거란 걸 알고 과학을 더욱 친근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알고 보면 우리 삶도 항상 과학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동아시아, 372쪽, 1만75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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