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美·EU '코로나 지원금'서 배워야 할 것들

입력 2020-08-06 15:23   수정 2020-08-06 15:25


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7500억유로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을 조성하기로 지난달 21일 합의했다. 유럽 통합론자들은 이 계획에 흥분과 기대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지원책을 두고 각 지방정부가 연합해 만든 연방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는 ‘미국식 모델’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맞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번 경제회복 기금은 유럽 각국이 돈을 모아 이탈리아 등 재정적으로 궁핍한 회원국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유럽 통합론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미국식 모델이다. 미국은 연방정부 통제 아래 각 주가 단일 통화를 쓴다. 연방정부가 전국에 걸쳐 걷은 세금을 재분배해 상대적으로 더 번영한 지역에서 걷은 돈을 비교적 가난한 주를 위해 지원하기도 한다.

유럽 통합론자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경제·정치적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EU가 미국처럼 ‘재정 연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가 모든 회원국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채권을 발행하고, 이에 따른 수익금을 각국 필요에 따라 보조금과 대출금으로 배분하자는 게 이들의 요구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엔 큰 문제가 있다. 실제 미국 재정 체계는 유럽 통합론자들의 생각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연방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지원금 계획을 가동하는 데 일정 부분 찬성하는 건 사실이다. 불황기에 소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회복지 혜택을 늘리고, 연방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공공사업을 벌이는 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같은 지원금이 결국 한 납세자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돈을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의회가 특정한 지원 계획이나 지원금 액수 등을 두고 긴 논쟁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이번 EU의 경제회복 기금 운용은 미국과는 상당히 다르게 될 전망이다. EU는 유로존 전역에 걸친 지출 프로그램을 관리할 정도로 정치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실질적 행정력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EU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회원국의 지원금 수령 필요성을 평가하고, 각국 정부의 자금 조달력을 가늠해 보는 정도에 그친다. 결국 재정이 가장 부족한 곳이 가장 많은 원조를 받을 것이다.

그야말로 미국이 명백히 기피하는 재정 연합 행태다. EU 각 회원국이 각자 필요한 만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 여부는 그동안 각국 정부가 어떻게 해왔는지에 따라 다르다. 독일은 20년 전 어려운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그 뒤엔 국가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이 합심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요즘 독일은 코로나19로 인한 비용이 늘어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이 여유롭다. 반면 이탈리아는 다르다. 이탈리아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그동안 경제 개혁 등 힘든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젠 자국 내에서 코로나19 경기 부양 사업을 위해 쓸 돈이 없다.

EU의 계획은 이같이 특정 국가가 이전에 내린 잘못된 결정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에선 이런 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970년대 미국 연방정부가 구제금융을 통해 파산 위기에 처한 뉴욕시를 지원한 적이 있었지만 여기엔 까다로운 조건이 여럿 붙었다. 요즘 빚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조건과 비슷하다.

미국 연방정부가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은 사례도 많다. 미국에선 대공황 이후 600여 지방자치단체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파산한 도시도 여럿이다. 2012년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샌버너디노, 스톡턴 등 도시 두 곳이 파산 처리됐다. 2013년엔 디트로이트가 파산했다.

이 같은 모델은 미국에서 잘 가동되고 있다. 미국에선 재정 ‘파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유로존에선 10년 전 경기 침체 이후 이 같은 파이 싸움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구제금융엔 항상 각종 간섭 정책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원금을 마련하는 데 일조한 다른 납세자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조건을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 지출 조건을 정하는 식이다.

요즘 미국 의회에선 주 차원의 다른 주에 대한 지원안이 논란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코로나19 경기 부양안 내용 중 급여와 연금을 과도하게 지출해 재정이 약해진 주에 구제금융을 주는 계획을 끼워 넣길 원하고 있다. 공화당원들은 이에 반대한다.

요즘 유럽과 미국은 서로의 모습에서 각자 교훈을 찾아볼 만하다. 만약 EU가 재정 통합이라는 야망에 걸맞은 정치 제도를 만들고자 한다면 미국의 오랜 연방주의를 모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유럽의 최근 재정 논쟁을 보면서 나쁜 결정을 내린 지방정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원제=Europe Turns America Into a Bad Example on Fiscal Policy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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