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가씨’의 주인공 히데코(김민희 분)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게 될 귀족 아가씨다. 백작으로 위장한 사기꾼 후지와라(하정우 분)는 히데코와 결혼해 그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후지와라는 숙희(김태리 분)를 고용해 히데코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걸 도우라고 요구한다. 숙희는 후지와라의 사기 결혼을 돕기 위해 히데코의 하녀가 된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히데코는 경제학적으로 ‘관계재(relational goods)’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관계재란 이탈리아의 사회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가 제안한 개념이다. 인간관계, 즉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생기는 재화를 말한다. 가족애, 우정, 사랑, 동료애 등이다. 관계재는 상품과 같은 형태가 있는 재화가 아니라 서비스처럼 형태가 없는 무형의 재화다. 이 관계재는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그 누구와도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히데코에게 관계재가 생길 리 만무했다. 행복을 찾으려는 히데코가 찾은 방법은 결혼을 이용한 탈출이었다.
그러나 히데코는 첫눈에 숙희가 마음에 들었던 데다 숙희가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면서 진심도 보여주자 그녀의 탈출 계획도 바뀐다. 숙희에게 자신의 본래 계획을 말하고 둘이서 외국으로 도망가기로 한다. 이때부터 숙희와 후지와라의 관계는 대체재로 바뀐다. 대체재란 콜라와 사이다처럼 비슷해서 동일한 효용을 얻을 수 있기에 대체할 수 있는 재화를 의미한다. 경쟁재라고도 하는 이 재화 관계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치근덕대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 추접스러운 후지와라를 이모부에게 버리고 숙희만 데리고 간 히데코처럼 말이다.
보완재와 대체재는 경제학에서 <그림1>의 수요의 교차탄력성으로 설명된다. 수요의 교차탄력성이란 어떤 상품의 가격이 변화한 데 대한 다른 상품의 수요량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림2>에서 X의 가격이 올라서(수요 감소) Y의 수요도 감소하면 두 상품은 보완재다. 수요의 교차탄력성이 음수다. 라면의 가격이 오르면 달걀도 적게 팔린다. 반대로 A의 가격이 올랐는데(수요 감소) B의 수요가 늘어나면 두 상품은 대체재다. 수요의 교차탄력성은 양수다. 돼지고기 가격이 인상됐을 때 소고기가 많이 팔리는 식이다.
이 정보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을 제시했다. 우리는 구애할 때 자신의 애정을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상대에게 전달한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신호 보내기(signaling)’라고 한다. 반대로 구애를 받는 입장에서는 구애자의 진심을 판단해야 한다. 이 작업을 ‘선별(screening)’이라고 부른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숙희는 한정된 시간 안에 명확하게 자신의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는 ‘신호’를 히데코에게 보낼 필요가 있었다.
숙희의 등장으로 인한 히데코의 변화는 ‘넛지효과’로 설명될 수 있다. 넛지(nudge)란 강요가 아닌,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강제하지 않고 행동을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 정의한다. 숙희가 직접 히데코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을 풀어주는 말을 함으로써 향후 행동을 바꾸게 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꾸는 넛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성소수자 존중 기업에 구매력으로 화답한다…'핑크머니'의 경제학
영화계에 아가씨와 같은 퀴어영화가 나오는 것처럼 경영계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게이임을 공개(커밍아웃)했다. 그는 여전히 애플 CEO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선 이들을 위한 판결도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제7조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게도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기업이 직원의 성적(性的) 취향, 성정체성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성소수자를 적극 지지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성적 다양성을 옹호하는 태도를 통해 ‘좋은 기업’이란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스타벅스 등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상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는 서울을 비롯한 세계의 퀴어문화축제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오비맥주의 대표 맥주 브랜드 카스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맞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광고를 게시했다. 저관여 상품 브랜드뿐만이 아니다. 고관여 상품 브랜드인 BMW도 지난달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를 활용한 로고로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꿔 지지를 표시했다.
기업의 성소수자 공개지지 표명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가진 시장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의 구매력은 ‘핑크 머니(pink money)’라고 한다. 컨설팅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세계에서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이 2018년 4억5000만 명에서 2023년 5억91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기업에 소비를 집중하는 이들이 상당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비(非)성소수자에 비해 성소수자들이 평균 가처분소득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내 기업도 성소수자 대상 마케팅에 참여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6월 성소수자의 달을 맞아 미국에서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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