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재고 도서' 가격 규제 풀어야

입력 2020-08-09 18:25   수정 2020-08-10 00:21

지난달 15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7월 출판계·유통계·소비자 단체 대표 13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가 16차례 논의를 거쳐 도출한 개선안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개선 대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격 규제를 강화한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다. 발행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뿐 아니라 실용서 학습서 전집 등 출간 시기와 종류,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책을 정가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제작·유통 과정에서 흠집이 난 리퍼 도서에도 정가제를 적용했다. 개정 법령은 추가 조항에 정부가 3년마다 제도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시행 결과 현실과 맞지 않는 조항은 개선하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게 제도를 신축적으로 운용하라는 취지다.
도서정가제 개정, 지지부진
2017년에는 할인율 축소 또는 확대, ‘장기 재고 도서’ 정가제 예외 지정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이해 당사자 간 첨예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개정 없이 지나갔다. 2차 시한인 올해 11월을 앞두고는 뭔가 개선의 합의점을 찾았을까.

이날 공개된 합의안도 ‘현행 유지’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은 데서 나타난 소비자들의 변화 열망을 반영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첫 번째 합의 사항으로 올려놓은 ‘소비자 후생을 고려해 실질적 할인 효과가 있는 재정가(再定價) 허용 기준을 현행 18개월에서 12개월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부터 어불성설이다. 재정가는 출판사가 이미 출간한 책의 정가를 다시 매기는 것이다. 시장 상황과 변화에 맞춰 그때그때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은 생산자의 재량이다. 그런데 출판사는 발행 18개월 이상 도서만 가격을 바꿀 수 있다. ‘간행물 재정가 공표시스템’에 정가 변경을 등록하고 15~45일이 지나야 적용할 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재정가 제도는 2014년 구간에 정가제를 적용한 데 따른 대안으로 생겨났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 정가제 ‘원조’ 국가들은 발행 1~2년이 지난 책엔 가격제한을 푼다. 도서정가제 시행 국가 중 적용 시한을 두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온라인 서점들의 ‘구간 광폭 할인’ 행사로 위축된 신간 시장을 살린다는 게 가장 큰 명분이었다.
소비자 선택 제한 재검토해야
재정가는 재고 도서를 처분하는 출구로 ‘발명’됐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출판사들은 주로 재정가를 마케팅보다 가격 조정 수단으로 쓴다. 수량도 적다. 초기에는 ‘인하’ 도서가 대부분이었으나 1~2년이 지난 뒤에는 ‘인상’ 도서가 더 많아졌다. 올 들어 재정가 도서 중 인상 도서는 2271종으로 인하 도서(1095종)보다 2배 이상 많다. ‘실질적 할인 효과’를 운운할 제도가 아니다. ‘도서관 등 공공기관 가격 할인 최대 10%로 제한’ ‘판매에 준하는 장기 대여 제한’ 등 나머지 합의 사항도 소비자 후생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문체부와 출판계가 합의안에 일부 이견을 보이며 충돌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쟁점은 웹툰·웹소설 등 전자출판물 정가제 예외 허용 여부에 한정돼 있다.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가격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핵심 규제는 ‘입장차가 현저하다’는 이유로 아예 논의 대상도 아니다. 다시 3년 뒤를 기약해야 할까. 전향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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