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지주회사 전환 권장하더니

입력 2020-08-10 17:52   수정 2021-04-20 17:22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은 부동산 투자만이 아니다. 지주회사도 그렇다. 김대중 정부가 허용하고 노무현 정부가 장려한 제도다. 적지 않은 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배구조가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LG그룹을 비롯해 국내 지주회사는 173곳(작년 9월 말 기준)이다. 대기업 중에는 LG 외에 SK 롯데 GS 현대중공업 한진 CJ LS 효성 등이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다.

지주회사는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등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여겨졌다. 지금도 일부 기업이 지주회사로 변신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여권이 갈수록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자회사·손자회사 지분 의무보유비율 강화 등 지주회사를 옥죄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획일적으로 확대하면 지주회사 소속 기업들도 규제를 못 피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은 평균 72.7%에 달한다. 지주회사 소속 계열사 간 거래는 예외로 인정해야 지주회사 체제의 취지를 살리고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각종 규제로 지주회사로 가는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유인책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2017년 4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삼성은 “사업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경영 역량 분산 등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지주회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과 보험업법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면 금융 계열사(삼성생명)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분을 받아줄 곳도 마땅치 않고 주가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금융계열사를 떼어내면 자동차할부금융사업을 하기 어려워져 판매에 타격을 받게 된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여러 자회사(계열사)와 공동투자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막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개편 방안에서 지주회사 설립을 뺐던 이유다.

지주회사 규제는 기업들의 투자도 가로막고 있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확보하도록 한 규정 탓이다.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여유 자금이 있어도 사실상 인수합병(M&A)에 나서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 오너 체제냐, 전문경영인 체제냐를 놓고 갑론을박할 이유도 찾기 힘들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잘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한국 기업의 저력이 확인되고 있다. 2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초격차’의 힘을 보여줬다. 현대차는 튼튼한 내수시장과 제네시스 등 경쟁력 있는 차량을 중심으로 2분기 영업이익이 컨센서스(3191억원)를 훌쩍 뛰어넘은 5903억원을 기록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이 주도하는 배터리는 반도체에 이어 제2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팜 셀트리온 등이 포진한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도 성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구조조정 한파 속에서도 2분기 영업흑자를 냈다.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여건만 갖춰주면 두려울 게 없는 한국 기업들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지주회사 규제는 강화할 게 아니라 모두 풀어주는 게 맞다.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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