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밴 플리트 장군의 편지

입력 2020-08-10 17:51   수정 2020-08-11 00:44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52세까지 ‘만년 대령’이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이 중장·대장으로 승진할 때, 9년 후배와 같은 계급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웠지만 진급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그와 이름이 비슷한 주정뱅이 장교 때문에 빚어진 ‘인사(人事) 참사’였다.

뒤늦게 오해가 풀려 1944년 8월 준장이 됐고 석 달 뒤 소장, 4년 뒤 중장으로 진급했다. 1951년 미8군 사령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포탄을 5배 퍼붓는 ‘밴 플리트 포격’으로 전황을 뒤집었다. 그 공으로 대장이 된 뒤 전선을 평양~원산까지 밀어붙이려다 휴전을 준비 중인 행정부에 밀려 뜻을 접어야 했다.

당시 그는 “이번에 공산주의자들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 휴전에 성공하면 민주국가들, 특히 미국은 수세기 동안 악몽에 시달릴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 와중에 외아들까지 잃었다. 신혼의 단꿈을 뒤로 하고 아버지를 따라 참전한 아들은 B-26폭격기로 야간 공습에 나섰다가 추락했다.

밴 플리트는 그 슬픔을 딛고 한국 육군사관학교를 4년제로 재편해 군 정예화에 힘썼다. 한국군 조직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늘려 현대화했다.

휴전 이후 전역한 그는 양국 협력을 위한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창설해 한국 재건에 앞장섰다. 1992년 100세로 별세하기 두 달 전, 그는 한국 육사 생도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유’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웠다.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자유란 소중하면서도 소멸되기 쉬운 것입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은 그들의 ‘자유’를 수호할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군대가 필요하며 그 군대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고 전문성과 모범은 시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그의 뜻을 기리는 ‘밴 플리트 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에 이어 올해는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방탄소년단(BTS)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방탄소년단은 오는 10월 7일 시상식에서 온라인 갈라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늦깎이 스타’ 밴 플리트가 살아 있다면 자랑스런 ‘자유의 후손’인 한국 꽃미남들과 함께 어깨춤이라도 출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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