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보다 뛰어난 코로나 백신, 내년 임상…출발 늦었지만 성공 자신"

입력 2020-08-12 11:01   수정 2020-08-13 15:17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국산 신약을 꼭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로 창업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박멸하는 데 필수적인 백신 개발에서 성과를 내겠습니다.”

유원일 아이진 대표(57)의 각오다. 올해로 창업 20년이 된 바이오기업 아이진은 세상에 없는 안과 질환 치료 신약을 개발하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그동안 축적해온 백신 기술을 토대로 효능이 뛰어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 등에 개발 속도는 뒤처져 있지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효능이 뛰어난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넨텍 같은 창업 꿈꾸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온 유 대표는 CJ제일제당 종합기술원에서 12년6개월을 근무했다. 단백질 의약품, 발효 의약품, 백신 등을 개발했다.

안과질환 치료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연구하던 분야도 아니었다. 어느날 안과의사들의 제안을 받고 생각이 달라졌다. “인구가 고령화되면 노화와 관련된 안과질환 치료제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만성질환인 당뇨병 환자도 늘어나 합병증인 당뇨망막증 같은 안과 치료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어요.”

유 대표는 회사에 안과 질환 치료제 개발을 신규 사업 과제로 제안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동료 연구원 서너 명과 함께한 술자리가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회사를 세워 직접 개발하는 게 어떠냐”는 유 대표의 제안에 동료 4명이 의기투합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조양제 기술총괄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유 대표는 퇴직금 등으로 1억6000만원의 종잣돈을 마련했다. 모교 근처인 연희동에 사무실을 냈다. 유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입주 건물 1층 호프집에서 세계적 바이오기업 제넨텍 같은 기업이 되자는 꿈을 키웠다. 미국 바이오기업 제넨텍은 창업자들이 호프집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다.
가까스로 건넌 데스밸리
꿈과 현실은 달랐다.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도움을 주는 곳도 없었다. 투자자들은 안과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아이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뇨나 항암 신약 개발사에 돈이 몰렸다. “창업 당시엔 안과 치료제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니 쉽게 믿으려들지 않았죠. 게다가 당장 목숨을 잃는 병이 아니다 보니 조명을 덜 받았어요. 창업 초기 5~6년은 그야말로 고난의 시기였죠. 집 담보대출 받고 사재를 털어 숱하게 고비를 넘겼어요.”

아이진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 2006년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노인성 황반변성 치료제인 ‘루센티스’의 판매 허가를 받으면서다. 그때서야 국내 투자자들이 안과 치료제 개발사를 찾았다. 아이진은 2010년 벤처캐피털의 첫 투자를 받았다.

유 대표는 사람 욕심이 유독 많다. 회사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투자를 유치하면 사람부터 뽑았다. 박사급 인재를 영입해 끊임없이 일을 벌였다. 그러다 또 돈이 달리면 투자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아이진은 89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174건의 특허를 출원 중이다. 지금까지 수행해온 국책과제만 32건이다.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이 든든한 자금줄은 물론 기술력을 쌓는 토대가 된 셈이다.
“당뇨망막증 신약 내년 미국 임상”
아이진의 대표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당뇨망막증 치료제 ‘EG-미로틴’이다. 당뇨망막증은 당뇨 환자 3명 중 1명에게서 발병한다. 세계적으로 환자 수는 1억4000만 명에 이른다.

아이진은 58개의 아미노산을 재조합한 사람 유래 ‘RGB 폴리펩타이드’ 성분으로 EG-미로틴을 개발 중이다. 아이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폴리펩타이드 약물로 당뇨망막증뿐 아니라 욕창, 창상, 심근허혈·재관류 손상 등 허혈성 질환을 치료하는 신약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 허혈성 질환 치료제와는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루센티스 아일리아 등 기존 치료제는 신생 혈관이 생기는 것을 막는 방식이라면 아이진은 제 역할을 못하는 기존 혈관의 기능을 되찾아준다. 신생 혈관이 생겨 염증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유 대표는 “적은 용량의 약물로도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EG-미로틴은 유럽에서 임상 2a상을 마쳤다. 국내에서는 순천향대병원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유 대표는 “유럽에서 환자 30명에게 임상했는데 투여 용량이 적어 효능 평가를 제대로 못 했다”며 “내년 미국 임상 2상에서는 환자 수를 100명으로 늘리고 투약 기간도 4~5배 늘려 효능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EG-미로틴의 경쟁력을 자신한다. 기존 치료제에 비해 장점이 많아서다. 루센티스와 아일리아는 안구에 직접 주사한다. EG-미로틴은 피하주사(근육주사) 방식이다. 투여 횟수도 연 2~4회로 적다. 반면 루센티스와 아일리아는 연 6~12회 맞아야 한다. 유 대표는 “EG-미로틴의 핵심 성분인 폴리펩타이드는 효모를 통해 손쉽게 생산하는 방식이어서 세포 배양인 루센티스와 아일리아보다 생산 단가도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아이진은 폴리펩타이드 기반의 욕창 및 창상 치료제 ‘EG-데코린’도 국내에서 임상 1·2상을 마쳤다. 유 대표는 “의사들이 욕창과 창상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해 연고제로 개발하고 있다”며 “현재 임상 3상을 앞두고 기술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장마비 환자의 스탠트 시술 때 주변 모세혈관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줘 후유증을 없애는 ‘EG-미요신’은 지난해 국내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유 대표는 “내년 말에는 임상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도전장
아이진이 보유한 비밀병기는 면역증강제 ‘EG-백(Vac)’이다. 백신 효능을 높여주는 일종의 보조제다. 하지만 자가면역반응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면역증강 기술은 극소수다.

회사는 이 기술을 활용해 GSK의 대상포진백신 싱그릭스의 바이오베터(바이오의약품 개량신약)를 개발 중이다. 싱그릭스는 지난해에만 2조5000억원어치가 팔린 블록버스터 제품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유 대표는 “2023년에는 싱그릭스 매출이 5조~6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동물실험에서 싱그릭스와 동등 이상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이진은 내년 호주 임상 1상이 마무리되면 기술이전에 나설 계획이다. 4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두 차례 투약을 완료했다. 유 대표는 “내년 5월께 임상결과가 나오는데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 회사의 대상포진 백신은 리포솜 내에 대상포진 항원을 넣는 방식이다. 핵 안에 있는 DNA의 유전정보를 담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활용해서다. 우리 몸속에는 RNA를 분해하는 효소가 많아 RNA는 불안정한 특징이 있다. 이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리포솜에서 찾은 것이다. 리포솜은 인지질 구조의 막 형태여서 물질을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아이진은 이 기술을 활용해 지난 3월 말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항원 단백질의 mRNA를 담은 리포솜을 우리 몸속에 넣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실제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오면 이를 기억하는 수지상세포, B세포, 대식세포 등 면역세포들이 바이러스를 공격하게 된다. 유 대표는 “팜캐드의 인공지능 기술로 코로나19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3종의 mRNA를 한꺼번에 넣은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며 “1개의 mRNA만 넣어 변이에 취약한 모더나 등 다른 백신들과는 차별화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초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시작한다. 유 대표는 “그동안 안과 치료제 개발에 전념했다면 이제는 백신 개발에 모든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출발은 늦었지만 안전하고 효과가 뛰어난 만큼 코로나19 백신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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