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주부의 노동

입력 2020-08-11 17:27   수정 2020-08-12 00:13

우리 세대는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다.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대부분 그렇다.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식사 준비, 청소, 빨래부터 자식의 학업, 집안 대소사까지 모두 주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부(富)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들 대학 진학의 전제조건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요즘 나는 의도적으로라도 집안일을 하려고 한다.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는 물론 밥하기 등 주부들이 평소 하는 다양한 일을 해 본다. 멸치 내장을 제거하고 파와 시금치도 다듬고 마늘 껍질도 벗겨 보면서 매번 음식 준비에 손이 너무 많이 간다고 느낀다. 오히려 손질된 농산물이나 반조리 식품을 사 먹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강상 텃밭 일을 놓지 않으시는 필자의 모친은 때마다 고구마, 고추 등을 보내 주신다. 그중에 깨가 있다. 직접 수확하니 티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티를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눈이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다. 하지만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뿌듯함을 느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표현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처럼의 가족 대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주부의 일은 해도 눈에 잘 띄지 않고,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예전에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가끔 “뭐 하느라 청소도 안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게 상황 판단이 안 된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요즘 집안일을 거들다 보면 전업주부가 바쁘고 할 일이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잘 이해한다. 열혈 전업주부들은 투자, 부업 등 가정경제까지도 신경 쓴다.

후생경제학, 행복경제학은 가사노동 문제를 다룬다. 주부의 노동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부의 노동 결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해서 국내총생산(GDP)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경우 주부의 가사노동은 2014년 기준으로 GDP의 24% 정도 된다고 평가된다. 순수 가사노동에 가정경제에서의 역할을 고려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요즘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고 가사 분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많이 한다. 가사노동 분담을 통해 더 많은 주부를 경제활동의 한가운데로 오게 하는 것도 우리 경제 활력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2020년대 매년 평균 30만 명 이상 줄어들게 되는 우리의 인구절벽 문제를 고려하면 더 절실해 보인다.

주부의 노동은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 경제의 밑바탕이다. 이번 여름휴가가 마무리되기 전에 하루이틀이라도 완전 주부로 변신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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