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음악과 추억

입력 2020-08-12 17:40   수정 2020-08-13 00:03

소설가 김영하는 그의 에세이에서 음악이란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연인에게 음악을 선물하면, 두고두고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니 그건 선물을 가장한 공격이라는 의미였다. 음악은 어떤 시절을 찰나에 환기한다. 장국영의 ‘당년정(當年情)’을 들으면 ‘영웅본색’을 봤던 10대가 금세 소환되는 것처럼. 그렇게 음악은 영혼을 순간적으로 점유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기억에 남는 음악이 대개 10대나 20대,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들었던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1990년대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운 레트로가 열풍이다. 새로운 레트로라고 해서 뉴트로(new retro)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상 레트로는 어느 시절에나 있었다. 1990년대에는 7080이 유행이었고, 1980년대에는 1960년대 스타일이 레트로였다. 이효리, 유재석, 비가 결성한 단기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 음원이 1위를 차지하는 현상도 여기서 멀지 않다. 그들의 노래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음원 차트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30대 이상 기성세대가 돌아온 결과다.

새로운 음악에 감수성이 반응하는 시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소개된 설문을 보면 30대가 되면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사는 게 바빠서, 하루하루의 일에 쫓겨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다거나 우연히 귀에 꽂힌 음악을 기억할 여유가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10대, 20대에 들었던 노래를 되찾아서 듣는 게 편하고 좋다. 그 순간이 바로 30대라는 것이다. 30대를 넘어서면 조금씩 새로운 음악보다는 옛 시절의 음악이 더 좋아진다. 음악보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향유하는 게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첫사랑 영화도 마찬가지다. ‘맨발의 청춘’이나 ‘별들의 고향’을 첫사랑 영화로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울나그네’로 추억하는 세대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클래식’의 손예진이 첫사랑의 대명사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건축학개론’의 수지가 첫사랑이다. 첫사랑 영화에 대한 추억의 최종 도착지 역시도 언제나 그렇듯 20대다. 그들이 살았던 20대가 달랐을 뿐, 그 각각의 20대 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첫사랑 이야기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우리의 감수성은 생각보다 빨리 굳어버린다. 20대에 들었던 노래는 듣기만 해도 가사까지 외워졌지만 지금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은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노력해서 듣는다고 해도 감성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어쩌면 우리의 감수성은 20대에 가장 높은 감도로 충전되도록 설계돼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20대에 마련한 감성의 창고를 조금씩 비워내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를 견뎌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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