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하면 뭐해, 집도 없는데" 후배들 수군거림에 얼굴 '화끈' [김상무 & 이부장]

입력 2020-08-17 17:56   수정 2020-08-18 10:48


직장인들은 요즘 모이면 아파트 얘기다. 직급에 관계없이 부동산, 주식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은 화제가 된다. “아파트값이 1억원, 2억원 올랐다”는 말은 흔하다. “10억원 넘게 벌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무용담’이 넘쳐난다.

하지만 ‘벌었다’는 사람이 있으면 ‘벌지 못한’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기업 임원, 팀장급 간부 사원 중에도 집 없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이들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들의 ‘말 못할 사연’을 들어봤다.
집 먼저 팔았다가 아내에게 원망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정 상무는 요즘 아내에게 원망을 듣는다. 2000년대 중반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판 탓이다. 당시에도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 정 상무는 이를 ‘매도 타이밍’으로 여겼다. ‘이쯤에서 수익을 한 번 실현하자’는 생각이 컸다. 당시 살고 있었던 아파트를 6억원에 팔았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전세로 이사갔다. 정 상무가 매도한 아파트는 현재 20억원을 훌쩍 넘는다. 당시 과장이었던 그는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잘나가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대치동 아파트 매각에 따른 ‘심리적 충격’이 있다. ‘지금이라도 대출을 끼고 구매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6억원에 판 집을 20억원에는 사는 것은 차마 못할 것 같다.

정 상무의 맘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요즘 후배들의 ‘재테크 후일담’이다. 한 대리급 후배는 아파트 갭투자로 수억원을 벌었는데 굳이 정 상무 앞에서 이 말을 떠벌리듯 해서 기분을 언짢게 한다. 하지만 겉으론 “젊은 사람이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번다”고 했다.

유통사에 근무하는 김 전무도 요즘 ‘부동산 블루(우울증)’에 빠졌다. 김 전무는 서울 마포에 반전세로 산다. 월세만 120만원에 이른다. 대신 그는 모은 돈 대부분을 주식에 투자한다. 이렇게 한 지 10여 년이 됐다. ‘10억원 이상을 엉덩이에 깔고 앉는 것은 몰상식한 짓’이란 신념 탓이었다. 현재 그의 주식 투자금은 9억원가량이다.

그가 투자한 주식은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한 종목에서 1억원 넘는 차액을 남겨 자동차를 바꾸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을 돌이켜보면 원금은 별 차이가 없다. 김 전무는 “지금 사는 서울 마포 집을 10년 전에 샀으면 세 배 넘게 올랐을 텐데 지금까지 뭐한 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괜히 훈수뒀다가 후배에게 혼쭐
요즘 시대의 김상무 이부장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이다. 이때도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집값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월급만 열심히 모으면 집을 살 수준은 됐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사회적 성공, 회사에서의 좋은 평가가 집값보다 훨씬 중요했다. 지금은 ‘라떼는…’이 돼버린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직장 상사와 폭탄주를 밤새 말아 먹고, 회사 야전 침대에서 밤을 지새웠던 이유다. 이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김상무 이부장은 후배들에게 자신이 한 경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기관리에 힘쓰라”고 말한다. 재테크도 자기관리의 한 범주에 속한다. 과거엔 재테크하는 것이 회사일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잘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은 재테크 못하면 자기관리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바뀐 시대를 사는 김상무 이부장의 마음은 한편으론 혼란스럽다. 회사는 실적을 내야 하는 곳이고, 목표한 실적을 달성하려면 구성원이 전심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런 근본적인 사고관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후배에게 강요했다가 ‘역공’을 당하는 일도 있다. 한 중견 건설사에 다니는 이 상무가 그렇다. 이 상무는 4년 전 같은 본부의 당시 박 과장과 저녁을 먹다가 그의 고민을 들었다. 박 과장은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강남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 상무는 말렸다. “나중에 고등학생 때 가도 늦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 일 열심히 해서 평가나 잘 받으라”고 조언했다.

박 과장은 이후 차장으로 승진했다. 내년이면 부장 승진 대상자가 된다. 실제로 회사 평가를 잘 받았다. 하지만 이 상무와의 관계는 이후 껄끄러워졌다. 술만 마시면 “형님 탓에 강남으로 못 갔다”고 푸념했기 때문이다. 이 상무는 그를 마주하는 것이 영 껄끄럽다. 그는 “자신이 결정한 것을 나를 걸고넘어지니 마음이 참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부동산 얘기는 금기…“후배들 안타깝다”
김상무 이부장 사이에선 ‘부동산을 화제로 올리지 말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다 가진 세대’로 통한다. 집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취업하기 쉬웠고 집값은 저렴했다. 부동산은 작은 집에서 시작해 넓은 집으로 가는 ‘선순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집을 가졌어도 고민은 있다. 자녀들의 집 문제다. 과거에는 자녀가 결혼하면 부모가 전세라도 마련해줘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결혼할 때 남자 부모가 전세자금을 주는 일이 흔했다. 여유가 있는 부모는 집을 사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요즘은 자녀의 전세금을 마련해주기가 쉽지 않다. 서울 시내 평균 전셋값이 5억원을 웃돈다. 아들 둘만 있어도 전세금으로 10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세금은 고사하고 반전세 보증금을 마련해주는 것조차 쉽지 않다. 김상무 이부장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마냥 좋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한 대기업 임원은 “딸 같은 후배가 부동산을 알아보느라 일에 열중하지 못하는 것을 봤는데 차마 야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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