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라임과 옵티머스, 그리고 상식

입력 2020-08-19 17:47   수정 2020-08-20 00:21

두 달 전 옵티머스 사기 전모가 드러났을 때 다들 스스로의 상식을 의심했다. 펀드 투자자에게 제시한 우량 채권이 아니라 부실 채권에 투자하는 식으로 감쪽같이 5000억원을 빼돌렸다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일이 가능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온갖 서류를 조작했다고 해도 금융당국, 판매 증권사, 수탁은행까지 죄다 속였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옵티머스 사기 수법은 라임 사태 때와 똑같다.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 수 있었던 제도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른바 ‘펀드 돌려막기’를 활용한 ‘폰지’(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이다. 금융위원회는 설익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의 덫에 걸렸고, 펀드 판매사들은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그러나 두 사모펀드 사기극의 차이는 크다. 라임자산운용이 시작부터 썩은 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금이 밀려들어오면서 사기의 유혹에 빠져든 측면이 크다. 공범도 많다. 수수료 탐욕에 빠진 은행과 증권사는 사태를 키웠다. 교도소 담벼락을 걷던 코스닥, 부동산 큰손들이 ‘눈먼 돈’을 갈취하고자 경쟁적으로 가담했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온갖 복잡한 금융기법으로 거미줄 같던 ‘플랫폼 금융사기’를 숨겨오다가 덜미가 잡혔다.

라임이 ‘바늘도둑’에서 시작됐다면, 옵티머스는 애초부터 ‘소도둑’이었다. 김재현 대표는 2017년 중순 옵티머스자산운용 경영권을 장악한 시점부터 펀드 사기를 벌였다. 초기엔 ‘레포 펀드’를 앞세웠다. 레포 펀드는 국공채, 은행채 등 우량채를 사들인 뒤 이를 담보로 자금을 빌려 다시 우량채에 투자하는 단기채권형 펀드를 말한다. 옵티머스는 정부 기금인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자금을 받아 연 2.1%를 추구하는 레포펀드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장외업체 사모사채를 사들여 성지건설 및 STX건설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우회 지원했다.

옵티머스는 다른 데서 펀드 투자금을 끌어다가 KCA 자금을 돌려줬다. 펀드 돌려막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짜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도 성지건설, STX건설이 보유했던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끌어오려던 과정에서 착안한 것이다.

초기에 대형 사기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2017년 11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제보를 받았다. 구체성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묵살했다. 공개된 옵티머스 사내전화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금감원 직원들은 제기된 의혹을 들여다보기는커녕 대주주 승인 과정에서 양호 회장과 김 대표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푼다. 라임 때 금감원이 ‘허수아비’였다면, 옵티머스 때는 ‘도우미’였다는 의혹까지 나오는 이유다.

금감원도 할 말은 많다. 당시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 설정이 본격화되기 전이어서 펀드 사기 행위를 인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한다. 엄밀하게 보면 당시 옵티머스 거래를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말한다. 펀드 약관을 보면 레포 펀드로 사모사채에 투자한다고 해도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 부사장도 라임 CI 무역금융펀드 자금을 환매중단 펀드로 돌린 뒤 판매사들에 “불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초래된 이유는 다양하다. 금융권에서 상식 밖의 일들을 방치해 온 영향이 크다. 금융시장에서 법보다 중요한 게 상식이다. 신뢰는 상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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