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가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이런 흐름이 강화됐다. 국내에서는 오너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화된 그룹의 최고 책임자로서 주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최근 10년 새 한국 5대 그룹의 리더가 모두 바뀌었다. 이들이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뒤 주가 움직임을 살펴봤다.
삼성전자 시총은 이 기간 204조4515억원에서 333조7108억원으로 63.22%나 급증했다. 반도체에서 나오는 탄탄한 실적과 주주환원 정책으로 투자자들이 몰려든 덕이다. 삼성전자를 성장주로 분류했던 당시 시장의 판단이 맞았던 셈이다.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거듭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2017년 한 해에만 9조2000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고, 총 5조8000억원을 배당에 쏟아부었다. 이듬해에는 ‘50 대 1 액면분할’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삼성전자 측은 당시 “액면분할을 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더 많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동학개미운동’의 기반이 된 셈이다. 같은 기간 다른 계열사의 희비는 엇갈렸다. 삼성SDI와 삼성전기는 시총이 각각 세 배, 두 배로 뛴 반면 삼성생명과 삼성중공업은 반토막 수준으로 주가가 내려앉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시 상장 4년이 채 되지 않아 시총 3위에 올랐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 40대 초반의 ‘젊은 리더’가 이끄는 LG그룹이다. 구 회장이 수장으로 올라선 이후 LG그룹 시총은 2년2개월 만에 30조원 증가했다. 90조8963억원이던 시총은 최근 119조530억원까지 늘었다. LG화학 주가가 배터리 부문의 고평가에 힘입어 급등한 덕분이다. LG전자 주가는 2018년 6월 이후 2년2개월 만에 9만원을 넘어섰다.
반면 친환경차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전통 유통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은 주가로 보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반에 나선 2018년 9월 14일 이후 현대차그룹 시총은 88조원에서 86조원으로 약간 줄었다. 현대차 시총이 늘었지만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로템 등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롯데그룹 시총은 신 회장이 회장을 맡은 2011년 이후 44.66%나 급감했다. 그룹의 주력인 롯데쇼핑 시총이 11조원대에서 2조원대로 쪼그라든 영향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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