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발전 수출 금지 나선 민주당

입력 2020-08-23 17:46   수정 2020-09-28 16:32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국내 기업의 석탄발전 수출사업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다음달 국회에서 한국전력과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발전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통과가 유력시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친환경 석탄발전 기술을 보유한 두산중공업과 국내 중소기업 등 관련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우원식·민형배·이소영 의원은 지난달 말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 4법’(한전법·수출입은행법·산업은행법·무역보험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각 법안은 한전과 수은, 산은, 무보의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해외 석탄발전사업 탓에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산업계에선 환경단체들의 압박에 여당이 휘둘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법안은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여당이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무난할 전망이다. 한전이 베트남 등에서 추진 중인 석탄발전소 건립계획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원전에 이어 국내 석탄발전 수출산업 생태계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해외 석탄발전사업은 건립부터 설계, 조달, 시공 및 운영까지 한전과 대기업 건설회사, 중견·중소기업이 참여하면서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팀코리아’ 프로젝트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기존에 계약한 사업의 자금 지원까지 중단된다”며 “해당 국가와의 계약 파기로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될 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 최고 친환경기술 있는데"…해외발전 中企 340곳 도산 내몰려
28일 한전 이사회가 분수령

집권여당이 석탄발전 수출사업 금지를 법제화하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발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근시안적 안목의 졸속입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투자 고민하는 한전
23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달 말 이사회를 열고 베트남 붕앙-2 발전소 사업 투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띤성 지역에 건설되는 붕앙 2호기는 1200㎿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로, 베트남 전력수급 계획에 따른 국책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2조5000억원으로, 한전의 지분참여 규모는 2200억원이다. 한전 참여가 확정되면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이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자로 참여한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대출·보증을 제공한다. 수은은 베트남 정부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금융지원을 확약했다.

업계에선 이사회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당과 환경단체들이 ‘석탄은 비윤리 사업’이라고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이사회 결정을 앞두고 잇달아 한전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당에서 공공기관의 해외 석탄발전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법 4법’을 지난달 말 발의한 것도 이사회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앞서 한전은 3000억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 사업도 여당과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진통을 겪었다. 지난 6월 말 가까스로 이사회를 열어 원안 가결로 투자를 결정했다. 이 사업은 두산중공업이 15억달러(약 1조7800억원)에 수주했다.

다음달 정기국회 통과가 유력한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법은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이 법은 발전소 건립뿐 아니라 운영 및 수명연장도 추진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금공급도 법 시행 즉시 중단된다.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이 빠져나간 빈 자리를 중국 기업이 대거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탄발전 산업 생태계도 붕괴 우려
국내 기업은 석탄발전을 수출할 때 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인 ‘초초임계압’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발전과 비교해도 탄소배출량 차이가 크지 않은 친환경 기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석탄발전 수출에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 기술을 사용한 프로젝트는 제한하지 않는 이유다. 중국은 아직까지 이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빠져나가면 기술력이 낮은 중국 업체가 대거 사업을 맡게 될 것”이라며 “탄소 배출이 늘면서 글로벌 대기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석탄발전 수출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에선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허가가 금지됐고, 노후 발전소도 조기 폐쇄하는 등 ‘탈석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해당 업계의 유일한 수익원은 해외 진출이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해외 수주사업의 절반가량이 석탄발전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핵심 수익원이 사라진 상황에서 석탄발전 수출마저 금지되면 재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EPC엔 342개의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한다. 중소기업 부문에서 7억달러 규모의 수출 효과도 기대된다는 것이 한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석탄발전 산업에 기반을 둔 기업들의 연쇄붕괴를 막으면서 출구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나서 교통정리 끝냈는데…
여권과 정부 일각에선 석탄발전 수출사업 전면 금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과도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국을 ‘기후악당’이라고 칭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일부 국가와 국제 환경단체는 한국이 석탄발전 수출에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기후악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해외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지속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됐다”며 “여당 중진 의원까지 환경단체 압력에 휘둘려 무더기로 금지법안을 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초초임계압

터빈에 유입되는 증기압력과 온도를 기존 초임계압 대비 최대치로 올린 기술. 증기압력과 온도가 높을수록 발전효율이 높아져 연료 소비가 줄어들고, 탄소 배출도 감소한다. 일반 석탄발전소의 탄소 배출량은 킬로와트시(㎾h)당 850g이상이지만 초초임계압은 750g 미만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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