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애프터눈 티' 영국 전통이자 거대 산업

입력 2020-08-24 17:55   수정 2020-08-25 00:24

옥스퍼드 올드 파스니지는 1120년 건립된 세인트자일교회 옆에 1660년에 들어선 5성급 호텔이다. 굵은 담쟁이덩굴이 돌벽에 뒤엉킨, 아직도 방문객이 드나드는 350년 된 돌쩌귀와 못으로 치장한 중후한 참나무 대문이 있는 소담스러운 정원에서, 화창한 여름날 오후에 약간의 샴페인을 곁들인 ‘애프터눈 티’를 즐기던 기억이 늘 새롭다. 풍운아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머물던 2층 방을 보면서 말이다.

애프터눈 티는 영국의 고유한 전통이자 관광객에게 제일 먼저 추천되는 문화 체험거리이고, 식음료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영국의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티는 160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일본에서 유럽으로 도입했다. 일본 티가 1615년에, 중국 티가 1637년에 차(Chaa)로 영국에 소개됐고, 1657년 런던의 커피숍에서 티를 팔았다고 한다. 청교도 혁명의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한 뒤 1660년의 왕정복고로 찰스 2세가 국왕이 돼 포르투갈의 카타리나와 1662년 결혼한 뒤 왕실에 티 문화가 등장한다. 이후 2020년 현재 영국 티 시장은 1주일에 약 1억5000만 잔이 팔리는 연 2조3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1위 소비국인 중국(약 95조원). 브라질(약 19조원), 인도(약 18조9000억원), 일본(약 14조원) 등에 이어 세계 13위 규모다.

1840년께 베드포드 공작부인 안나 마리아가 점심과 저녁 간격이 너무 커서 홍차와 빵과 케이크 등을 ‘낮은(low)’ 안락한 소파에 앉아 즐기던 것이 상류 사회의 애프터눈 티 풍습이 됐다. 이를 ‘로 티(low tea)’라고도 하는 배경이다. 티가 대중화되면서 중산층, 저소득층도 하루의 중간인 오후 5~6시께 높은 의자와 정찬용 ‘하이(high)’ 테이블에 잠시 앉아 티타임을 갖게 된다. 이를 ‘하이티(high tea)’라고 불렀는데 현재는 애프터눈 티와 혼용되기도 한다.

1897년에 케임브리지 근처 그란체스터의 사과밭에 애프터눈 티를 전문으로 하는 ‘오차드 가든’이 열렸다. 1차 세계대전 때 요절한 시인 루퍼트 브룩이 1909년 이 근처로 이사 오면서,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의 주요 작가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안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현대 거시 경제학의 거두 존 M 케인스, 《인도로 가는 길》을 쓴 소설가 에드워드 M 포스터,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분석철학 창시자인 버트런드 러셀, 화가 아우구스투스 존,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과 애프터눈 티로 어울리게 됐고, 이것이 ‘그란체스터 그룹’이라고 불리는 20세기 초 최고 지성들의 모임이 됐다. 펍 중심인 옥스퍼드의 문학·철학 동아리 ‘잉클링’과 달리 케임브리지는 ‘애프터눈 티’를 통해 현대의 문학·경제학·철학·언어학·회화·수학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차드 가든은 여전히 애프터눈 티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사과꽃이 피는 4, 5월이면 애프터눈 티를 즐기면서 이 선각자들을 크게 기리고 있다.

중국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2018년 4월 필자를 포함한 교수 몇 명을 오차드 가든 ‘애프터눈 티’에 초대해 미래기술을 논했다. 그 뒤 화웨이가 케임브리지에 영국연구소 설립, 수조원의 반도체 공장 건립, 케임브리지대에 대한 연구 지원 계획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미·중 갈등과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이 계획에 진전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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