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잣대로만…판매사에 모든 책임 물은 '찜찜한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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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8-28 17:29   수정 2020-08-29 00:58

'소비자 보호' 잣대로만…판매사에 모든 책임 물은 '찜찜한 선례'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은 투자자의 승리로 끝이 났다. 우리은행과 신한금융투자,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모두 투자원금 전액을 돌려주는 내용의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 6월 30일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다. 전액 반환 결정의 대상은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다. 부실 금융상품에 대해 100% 배상결정이 내려진 첫 번째 사례였다.

잘못된 상품을 판매한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돈을 환불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몇 가지 두고두고 논쟁이 될 만한 쟁점을 남겼다. 우선 상품운용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모두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금융투자상품의 특수성(자기책임 원칙)이 간과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판매사별로 펀드운용과 부실 은폐에 관여한 정도가 다른데 일률적으로 100% 배상 결정을 내린 건 무책임한 처사라는 의견이 있다. 라임 분쟁조정이 남긴 쟁점을 정리해봤다.

(1) 투자손실인데 100% 배상?
역대 투자자-판매사 간 분쟁조정에서 100% 배상 결정이 내려진 건 라임펀드가 처음이다. 분조위는 과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동양사태, 키코(KIKO) 등 부실상품 불완전판매 사건에서 최대 80%까지 배상비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라는 민법상 법리를 끌고 와 100% 배상을 결정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한 운용방식 등으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1등급(매우 높은 위험) 상품이었다. 아무리 펀드 운용 과실로 손실이 났더라도 일정 부분은 투자자 책임을 묻는 게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경우 펀드 투자금을 전액 돌려받기 위해선 법원 판결을 통해 판매사 등의 사기 혐의가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사기보다 피해자 구제에 시간이 적게 걸리면서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로 결론냈다.

법조계에서는 “금감원이 ‘소비자 신속 구제’를 명분으로 사법부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전액 배상을 결정한 건 월권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전문 변호사는 “법원에서 펀드 부실 운용과 관련한 형사적 판단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민사상 책임을 100% 지우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말했다. 만약 법원에서 분쟁조정과 다른 판단이 나올 경우 투자원금을 반환한 판매사들은 배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2) 모든 판매사가 똑같이 책임?
분조위는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인 우리·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모두에 투자원금의 100%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판매사마다 펀드 운용에 개입한 정도가 달라 부실을 알아차린 시점도 차이가 나는데 같은 배상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한금투는 단순한 판매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라임과 함께 무역금융펀드 상품구조 설계 등을 주도한 ‘공범’이었다. 라임과 신한금투는 2017년 5월 신한금투가 제공한 3600억원 규모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을 활용해 신한금투 명의로 북미와 남미 등 해외 무역금융펀드 투자를 시작했다. 2018년 11월 무역금융펀드 사무관리사로부터 펀드에 부실이 발생해 곧 청산 절차가 개시된다는 통지를 받은 것도 신한금투였다. 부실을 알고도 판 셈이다.

우리·하나은행과 미래에셋대우는 불완전판매의 소지는 있지만 신한금투와는 다르다. 이들 금융사는 조만간 신한금투를 상대로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를 핑계로 구체적인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을 금융사에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차등 배상도 논쟁의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펀드에 가입해, 같은 피해를 본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달리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3) 다른 펀드 분쟁조정은 어떻게?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전액 배상 결정은 분쟁조정이 진행 중인 다른 펀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금감원에는 라임펀드(판매액 1조6679억원)를 비롯해 젠투펀드(1조900억원), 옵티머스펀드(5565억원), 디스커버리펀드(2727억원),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1645억원) 등에 대한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돼 있다.

금감원은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검사 과정에서 계약 당시 상당한 부실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돼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가능했던 것”이라며 “다른 펀드들도 거기에 해당할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분쟁조정으로 금감원이 ‘최대한 신속히 소비자피해를 구제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만큼 다른 펀드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라임펀드에 대한 100% 배상 결정으로 다른 펀드 투자자의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금융사들은 앞으로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금감원의 분쟁조정은 일종의 권고사항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소비자나 판매사 어느 한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법정소송으로 끌고가는 것도 가능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편면적 구속력 등 분쟁조정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면적 구속력’이란 투자자가 분쟁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사는 어떠한 소송 제기 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제도를 뜻한다. 다음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만원 이내 소액분쟁 사건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형주/박종서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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