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 이부장] 잘나가던 프로젝트마저 엎어질 판…'왜 하필 코로나 때 별 달았나' 한숨

입력 2020-08-31 17:12   수정 2020-09-01 00:50


기업의 별 ‘임원’은 직장인들의 소망이다. 대다수 월급쟁이가 임원 한번 해보고 퇴직하는 것을 꿈꾼다. 사원으로 시작해 사장, 회장에까지 오른 경우 ‘샐러리맨 신화’라는 말이 붙는다. 한 조사기관이 지난해 말 발표한 ‘100대 기업 임원 비율 현황분석’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중견기업 임원 한 명당 평균 직원 수는 128.3명이다. 직원 100명 중 임원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이 0.78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좁은문’을 뚫은 임원들은 행복할까. 적어도 올해는 ‘노(No)’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으로 성과를 내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회사에서 떨어진 목표치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평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고 토로하는 임원들이 적지 않다.

재택근무 등 일하는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화상회의, 업무 솔루션 등으로 지시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임원이란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에 언급되기도 한다.
“팀 해산했는데 성과는 무슨 수로 내나”
지난해 말 임원으로 승진한 한 중견기업의 이 이사는 요즘 재택근무를 한다. “스태프 조직은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하라”는 지시가 최근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던 프로젝트는 중단됐고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태스크포스(TF)팀도 해체됐다. 팀원은 자신들이 속한 부서로 복귀했다. 이 이사는 자신이 임원으로 승진하고 맡은 첫 프로젝트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TF 해산으로 속수무책의 상황이 됐다. 경영진은 “당분간 일을 크게 벌이지 말자”고 했다.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지만 서류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이 이사는 “프로젝트가 재개될 실낱같은 가능성을 믿고 지난 7개월간 진행한 프로젝트 서류들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임원 김 상무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그는 올초 50대 중반의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 전까지 10년 가까이 부장으로 일했다. 승진의 기쁨은 잠시였다. 코로나19 탓에 아파트 건설공사 수주 일정이 줄줄이 미뤄졌다. 회사에선 ‘대안’을 요구했다. 아파트 공사가 없으면 공공 입찰 프로젝트라도 가져오란 얘기였다. 아파트 공사가 ‘전공’인 그에겐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김 상무는 “매출 압박 탓에 매일 회사에 나가고는 있지만 일감이 없어 걱정”이라며 “여름휴가를 반납한 전무님이 스트레스 탓에 화를 자주 내서 밤에 잠도 안 온다”고 털어놨다.

올 상반기 경영 평가 담당부서로 발령받은 한 공공기관의 고 실장은 “올해 아예 리셋을 하고 내년을 2020년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연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업과 기관이 사실상 거의 없는 만큼 올해 연도별 평가를 예외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공공기관은 매년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성과급 액수와 직원 복지 처우 등을 결정한다.
간부들은 현장영업 중
국내 한 제약회사에서 병원 영업을 담당하는 김 부장은 주말이 더 바쁘다. 병원 관계자들과 골프 일정이 쭉 잡혀 있다. 코로나19로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병원 출입이 금지되면서 골프가 최근 김 부장의 유일한 영업수단이 됐다. 낚시, 등산 등도 해봤지만 병원 관계자들이 골프를 가장 선호한다는 게 김 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과장급 이하 영업사원들은 요즘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며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주말에 ‘날품’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계 소비재 제조기업의 김 이사는 최근 경영진으로부터 “온라인 채널을 통해 새로운 판매처를 뚫어보라”는 ‘특명’을 받았다. 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통한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김 이사에게 불똥이 튄 것. 직장 생활 20년 동안 주로 관리·기획 부문에서 근무했던 그에게 마케팅은 생소한 분야다. 그렇다고 마케팅 담당 직원을 새로 채용하기도 어렵다. 그는 “승진에서 두 번 물 먹은 것이 억울했는데 지금은 승진한 걸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콘텐츠 기업에 다니는 최 상무는 “추진하던 사업을 조금이라도 빨리 ‘손절’했어야 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공연기획사와 올가을 개최를 목표로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였다. 원흉은 코로나19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 힘들어지면서 프로젝트 전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시간이 남았으니 일단 버텨보자’고 경영진을 설득했는데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라고 했다.
인사평가 고충 가중
경기 시흥의 중소 제조기업 영업부서에 재직 중인 최 전무는 “인력 감축을 해야 하니 수시 인사평가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상반기 인사평가를 끝낸 지 한 달 만에 다시 직원들을 평가하게 된 그는 한숨만 쉬고 있다. 최 전무는 “내 손으로 후배들의 밥줄을 끊는다는 생각을 하면 밤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채용 관련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 본부장도 정리해고 명단을 작성 중이다. 그는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경험하고 있어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적악화로 인한 퇴사 압박은 김상무 이부장에게도 남 얘기가 아니다. 경기 용인의 한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구 부장은 상반기 목표 실적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그의 회사는 실적 하위 10% 안에 두 번 이상 들면 사실상 회사를 나가라며 압박을 주는 곳이라고 한다. 그는 “혼자서만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다”며 “꾹 참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가계 생활비부터 줄이고 있다”고 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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