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삼성 해체하라는 '삼성생명법'

입력 2020-08-31 17:56   수정 2021-04-20 17:23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취지는 보험사가 특정 회사 자산에 몰아 투자했다가 부실이 나 고객이 피해를 보는 일을 막자는 데 있다. 그럴싸해 보이는 이 법안은 삼성그룹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법안 적용을 받는 보험사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두 곳이어서 ‘삼성생명법’으로 불린다.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액 평가를 ‘시가’(현행 취득원가)로 계산해 이 금액이 ‘총자산의 3% 이내’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8.51%)과 삼성화재(1.49%)는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20조원어치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이 외부로 넘어가면 20% 남짓한 이재용 부회장의 우호지분이 크게 낮아져 삼성은 사실상 ‘주인 없는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삼성물산이 보유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지분 43.4%(시가 약 22조원)를 팔아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면 된다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면 자회사 주식가치가 총자산의 50%를 웃돌게 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

삼성물산이 삼바 주식을 팔아 취득 가능한 삼성전자 지분은 약 6.8%. 양도차익법인세를 빼면 실질적으로 4%가량을 살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갖고 있는 지분(5.01%)을 합하면 9% 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

삼성물산이 지주사가 되면 ‘또 다른 함정’에 빠진다. 자회사가 된 삼성전자 지분을 20% 이상(공정법 개정안 통과 땐 최소 30%) 보유해야 하는 지주사 의무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삼성물산의 자금여력으로는 수십조원을 들여 삼성전자 지분 11%가량을 추가 매입하기 어렵다. 지주사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기존 보유 물량까지 모두 매각해야 한다.

법안대로라면 삼성전자 지분은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고, 이를 외부 세력이 사들이면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국민연금(11.1%)이 최대주주로 올라설 가능성도 크다. “삼성을 KT나 포스코처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매입 시나리오는 불가능한 안인데, 대안인 것처럼 흘리는 데는 (법안 통과를 위한) 저의가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매물로 나온 삼성전자 지분을 외국인이 사들이면 지분율(현재 약 56%)이 60%를 넘게 된다. 삼성전자의 연간 배당금을 10조원으로 가정할 때 6조원을 외국인이 가져가게 된다. 국부유출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하다. 몇몇 외국인 주주들이 연합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위협해도 방어가 힘들어진다.

삼성생명이나 화재는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보험사로서 우량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우량주로 장기 투자대상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설령 두 보험사가 삼성전자 지분을 판다고 해도 이후 사들일 다른 주식이 삼성전자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시가총액이 불어나는 우량주는 사기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수십 년간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시가가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매각하도록 하는 것은 법안 취지와 달리 보험사와 고객에 오히려 손해를 안길 수 있다. 더구나 특정 회사를 ‘타깃’으로 삼은 법률이어서 정당성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분할매각(5년)한다고 해도 삼성전자 매물이 시장에 대량으로 풀리면 증시 충격도 우려된다.

삼성으로선 거여(巨與) 정국 속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대관업무는 없어진 지 오래다. 각종 소송과 재판에 경영진과 임직원의 손발이 묶여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도 ‘초격차’ 신화를 쓰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런 와중에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를 흔드는 일은 자해 행위나 다름이 없다.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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