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부동산'이 인사 제1원칙 된 문재인 정부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9-02 09:30   수정 2020-09-02 10:06


문재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제1원칙이 '부동산 흠 없는 사람'이 되고 있다. 20명이나 되던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다주택자가 '제로(0)'가 됐다고 청와대가 먼저 나서 자랑할 정도이고, 새로 내각과 청와대에 합류한 인사들도 '부동산이 깨끗한 사람들' 일색이다. 다주택자는 인사 검증에서 발견되는 즉시, 앞뒤 사정 보지 않고 탈락시키는 것 같다.

정부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 급등과 혼란 양상이 오로지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손쉽게 단정했다. 그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대표적인 투기세력이란 인식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집이 여러 채인 사람은 제아무리 높은 전문성과 리더십, 추진력을 갖췄어도 현 정부와는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기한 내에 집을 팔지 못해 불명예 퇴진한 청와대 고위직도 여럿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용해 쓸 수 있는 인재는 갈수록 손에 꼽게 생겼다.
◆'갭투자'도 이젠 용납하기 어렵다
부처 장·차관이나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은 정권과 철학을 함께 하는 자리라고 이 정부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하니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다. 다주택 보유를 죄악시 하는 정부 요직에 다주택자가 버티고 선 모습은 아무리 개인적 사정이 있다고 해도 보기 불편한 이유다. 정권도 낯뜨거운 일이긴 하나, 눈 질끈 감고 "실거주 외 나머지 주택은 파시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일로 청와대 경내에서 언쟁까지 벌였다는 김조원 민정수석까지 물러났으니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건가? 그렇지 않다.

부동산과 관련된 국민들의 눈높이는 이 과정에서 한단계 더 높아졌다. 이제는 다주택자가 아닌데도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처신이 입방아에 오른다. 이낙연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그렇다. 이 대표는 4·15 총선 종로구 출마를 위해 직전 서울 잠원동 아파트를 팔고 종로구 '경희궁자이' 아파트에 세를 얻었다. 그리고는 총선 다음 달인 지난 5월 같은 종로구내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들였다. 무주택자에서 1주택자가 된 것이지만, '갭투자'(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적은 자금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 대표측은 "실거주 목적이라 그렇게 볼 수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경희궁자이 아파트 전세의 만기가 1년 6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집을, 그것도 전세 낀 채로 매입하는 것이 '갭투자' 아니고 무엇인가. 집값이 안정될 거라고 믿으면 1년 6개월 일찍 집을 장만할 이유는 없다.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불안한 무주택자의 심정에서 집을 미리 사둔 것이라고 변명하는 게 차라리 낫다. 그렇더라도 이 역시 '갭투자'의 일종이다. 현 정부는 갭투자도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가진 자'들의 탐욕스런 행위라고 매도해왔다.

더 큰 문제는 집값과 관련한 정부의 메시지와 반대로 갔다는 점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등에 나와 '최근 부동산 대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곧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얘기를 일관되게 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행태다. 당정은 혼연일체가 돼 집값 안정에 사활을 걸었고, 그리 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직전 총리가 '글쎄'라고 이견을 내보인 거나 마찬가지다.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 지명자도 매 한가지다. 미래통합당 한기호 의원실에 따르면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총장 공관에 거주하면서 서울 홍은동 아파트를 세를 주고 있었다. 같은 단지내, 좀더 큰 평형의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작년 10월 매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 세를 주던 아파트를 지난 5월에 처분했다. 넓은 평형의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불가피하게 약 7개월 가량 2주택자가 됐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일시적 2주택 보유가 아니다. 직접 거주하지 않는 보유주택을 팔고 새 집을 사려면 대개는 기존 주택을 먼저 파는 게 순리다. 거꾸로 새 집부터 사는 것은 집값 상승을 예상할 때 보이는 행태다. 대통령부터 나서 "부동산을 꼭 안정시키겠다"고 확언하는 중에도 이처럼 정부 최고위직 인사들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갭투자라 지적받을 일들을 무심하게도 벌였다.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는 '자업자득'
문재인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인사기준이 '다주택자 배제'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인사 후순위 후보가 어부지리로 앞순위 경쟁자들을 제치고 낙점받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최근 청와대 인사에서도 그런 기류가 있었다는 전언이 있다. 서욱 육참총장의 국방부 장관 발탁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 인사여서 여러 해석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욱 총장 윗 기수(사관학교) 출신 후보들이 검증에서 부동산 관련 건으로 탈락하며 기회가 서 총장까지 왔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서 총장은 1주택자이니 문제가 없었나 보다.

'1주택 또는 무주택자' 기준을 강조하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도 얻게 됐다. 기수나 서열 등 예전의 인사에서 중시되던 것을 후순위로 돌려 '파격 인사'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뭔가 조직내 새 기풍과 혁신을 요구하는 듯한 생각지 않은 부수효과다. 서욱 육참총장이 신임 국방부 장관에 지명되고, 그의 선배 기수인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에 내정된 게 대표적이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정부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편가르기 정치'에 몰두하면서 결국 인재 풀을 넓게 못쓰고 자승자박하는 상황을 맞았다. 너무 코미디 같은 인사 기준에 정색을 하고 따지기도 그렇다. 하지만 정부가 너무나 태연자약하며 표정관리를 하니, 이제는 국민들이 세밀하게 평가하고 나섰다. 이 모두가 지금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수많은 국정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한 '부동산 시장 안정' 때문에 정부의 리더십은 심각하게 훼손됐고 부동산 외 문제에서도 사회통합과 갈등조정에 힘이 많이 떨어지게 생겼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직 장관 18명 중 9명이 아직도 2채 이상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다.

집값이나 부동산 경기는 본래적으로 순환 사이클을 타게 마련이다. 현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이 50% 이상 올랐으니 이제 진정될 때도 됐다. 그게 시장의 힘이요, 자율조정 기제다.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경찰국가의 위용을 보이며 '부동산 때려잡기'에 나서니, 오히려 시장이 과잉반응하며 더 값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이제 집값이 안정되면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라고 홍보할 판이다. 그 와중에 속마음을 다 내보인 현 정부 인사들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는 국민들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정부가 '공정' '정의' 같은 어떤 통치철학을 앞세우더라도 '빈말'일 뿐이라는 게 다 들켰다. 이래가지고 문재인 정권이 어떻게 재집권의 꿈을 얘기하는 지 모르겠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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