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는 취준생 "코로나로 1년 날려, 불합격할 기회조차 없다"

입력 2020-09-06 17:36   수정 2020-09-07 10:11

“계약직 또는 인턴이 되는 것도 어렵습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데 자리마저 줄어 걱정이에요.”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민경서 씨(27)는 2년째 취업준비 중이다. 지난해 6개월간 공기업 인턴 활동이 끝나고 올해는 기필코 취업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쉽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채용에 나서는 기업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해에도 ‘취업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취업난이 심했는데 올해는 그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됐다. 민씨는 “기회가 줄어드니 경쟁이 더 치열하다”며 “나이는 한 살 한 살 드는데 코로나19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30대 대기업 중 11곳만 채용
한국경제신문이 만난 취업준비생 대부분은 “채용시장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암울하다” “절망적이다”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올 상반기 채용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 위축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올라온 채용공고 등록 건수를 비교해보면 올해 상반기는 전년 동기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30대 대기업 공개채용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8곳이 공채를 했지만, 올해는 11곳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당장 고용을 늘리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코로나19로 연초 세웠던 사업 계획 상당수가 어그러지면서 예년 수준의 실적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며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이 시급한 상황에서 채용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인력을 대거 뽑아 놓는 공개채용 대신 필요한 인력을 그때그때 뽑는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채용마케팅전문기업 엔에이치알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올해 채용을 추진했던 많은 기업이 당초 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며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를 만나보면 ‘코로나19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몰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취업준비생의 대표적인 스펙 쌓기 프로그램인 인턴도 사라졌다. 내년 2월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전모씨(23)는 “우리 세대는 인턴을 돌고 도는 ‘인턴낭인’이 될 기회도 잡기 어렵다”며 “워낙 공고가 없다 보니 채용형 인턴이 아닌, 체험형 인턴까지 고(高)스펙 경쟁자가 몰린다”고 말했다. 전씨는 “내년 여름까지도 이런 분위기면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졸업생 김다은 씨(26)는 “이대로 가다간 30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취업 및 인턴 지원 때 내세울 ‘스펙’을 쌓기도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대부분의 자격시험이 연기되거나 취소됐기 때문이다. 토익 시험은 지난 2월 29일을 시작으로 연기 및 취소를 거듭했다. 7월엔 1년에 두 차례(7, 12월) 치르는 일본어능력시험(JLPT)이 취소됐다.

스터디활동 같은 취업 준비활동이 어려워지고 사람 간 접촉도 줄면서 ‘코로나 세대’는 고립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정모씨(20)는 “코로나19는 선후배를 만나며 사회 생활을 간접 체험할 기회까지 빼앗았다”며 “대학생이 되면 다양한 학내외 활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고 억울하다”고 했다.
취업해도 고용 불안에 걱정
가까스로 취업을 한 코로나 세대도 좌불안석이다. 경영환경 악화로 직원 규모를 줄이려는 기업이 많아져서다. 실업급여를 받게 조치해줄 테니 나가달라는 권고를 받는 일도 빈번하다. 취업하자마자 유급휴직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이정수 씨(27)는 “에미레이트항공을 다니다가 입사 2년도 채 안 돼 해고당한 친구를 보면서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며 “취업 대신 유튜브를 해서 돈을 버는 게 도리어 안정적이란 얘기도 오간다”고 말했다.

작년 8월 대학 졸업 후 승무원을 준비하던 김록현 씨(27)는 “통상 승무원은 1년에 세 번 이상 공채가 열리는데 올해는 아예 공고조차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김씨는 얼마 전 한세실업 현장관리직에 2차까지 합격했다가 채용이 중도 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자 회사 측에서 채용방침을 철회한 것이다. 그는 “왜 하필 내 삶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자괴감이 든다”며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더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관광업계도 마찬가지다. 여행업체에 취직한 김모씨(26)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3월부터 주 2일 근무에 월급 88%를 받았다. 회사가 60%를, 정부가 나머지 28%를 지원해주는 형태다. 이마저도 6월부터는 정부지원금만 받고 있다. 김씨는 “4월부터는 필수 인력 200명을 제외한 전 직원이 유급휴직에 들어갔다”며 “다시 취업을 준비하려고 주 4일에 월급 65만원짜리 학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정지은/김성희/김종우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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