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에서는 "한 도시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폭격이 아니라 임대료 통제 "라는 말이 유명하다. 약 100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도입한 임대료 통제정책이 대실패로 끝난 뒤부터 인용빈도가 높아진 경구다. 당시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다’며 도입한 오스트리아 집권 사회민주당의 임대료 통제정책은 집주인의 관리 외면과 신축주택 감소를 불러 세입자 고통과 도시의 슬럼화를 촉발했다. 탁월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 사례를 분석해 1931년에 "임대료 통제가 오스트리아 경제의 지옥 문을 열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히틀러의 독일과 함께 3대 전체주의 정권으로도 불렸던 오스트리아 좌파세력의 무지가 부른 참사였다.
전세감소는 전세와 월세를 혼합한 반전세 확대를 부르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반전세 비중은 7월 9.9%에서 8월 13.9%로 급증했다.7월에 보증금 6억원,월세 90만원이던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 84㎡이던 시세는 8월에는 보증금 6억원,월세 140만원으로 월세가 50만원이나 높아졌다.
경기권 사정도 다르지 않다. 8월중 경기권 아파트의 전월세 거래건수 역시 1만1280건으로 최저를 기록했다.하남 등 3기 신도시 예정지 일대에는 전세매물이 전무한 아파트 단지도 잇따라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심심찮다. 치솟는 전세값을 따라잡지 못한 세입자들이 싼 집을 찾다보니 빌라 전세값까지 동반급등중이다. 서울의 전월세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으로 밀려나는 '전세시장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서민주거안정을 위한다'며 시행한 임대차 3법 등장 이후 전세매물이 줄고 가격이 요동치며 서민주거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는 게 현장의 이구동성이다.
부총리의 말처럼 매매가격이 얼마간 떨어진 곳이 있다 하더라도 10억,20억원대 아파트 시세는 서민 삶과 무관하다. 선별적 통계도 제시하기 어려워서였던지 부총리는 전세값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당국자들이 작은 전공을 부풀리기에 급급한 뒷켠에서 가족과 고단한 몸을 누일수 있는 작은 전세집을 찾아 헤매는 서민들의 눈물이 쌓여가고 있다.
스물 세번의 규제를 밀어붙이며 역사에 기록될만한 정책실패를 자초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현실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 발언을 자제하는가 싶더니 편파방송으로 이름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해 "서울 집값이 하락 안정세"라며 예의 엉뚱한 발언을 되풀이했다.
서민 삶은 파괴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규제대책인 부동산거래 감시기구 설립이 구체화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만 있다는 통제기구의 등장이 또 얼마나 시장을 왜곡하고 그 결과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게될 지 걱정이 앞선다.
일련의 시장동향과 당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정부 부동산정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든다. '시장 안정'과 '서민 주거복지'가 정책목적이라면 지금은 부작용 대책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점점 더 센 규제카드를 꺼내 들고 시장참가자들에게 호통치기에 급급하다. 엉터리 통계를 선별인용하며 실상을 왜곡하고, 시장 제압을 무리에 무리를 더해가는 모습이다. 패닉에 빠져 '영끌'에 나선 중산층·서민·청년들을 투기꾼으로 몰며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정황을 놓고 보면 정부의 목표가 시장안정·서민주거생활 향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정책당국자들의 시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게임에 몰두중인 정치권의 심기살피기로 향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래저래 '전세 찾아 삼만리' 대열은 점점 길어지고 시장의 좌절과 분노도 높아만 간다. 서민 파괴가 도시파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쓰나미가 덮칠까 조마조마하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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